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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업체인 중국 BYD(비야디)가 단 5분 충전으로 400㎞를 달릴 수 있는 초고속 충전 시스템을 출시한다고 지난 17일 발표했습니다. 이는 15분 충전으로 275㎞를 주행할 수 있는 테슬라의 슈퍼차저보다 충전 속도가 빠르고 주행거리는 더 길어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죠.

BYD는 전기차의 충전 시간을 내연기관 자동차의 주유 시간만큼 짧게 줄이는 게 목표라고도 했습니다. 마침 이 회사는 작년 매출에서도 테슬라까지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BYD가 전기차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는 평가(증권사 UBS)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닙니다.

급부상 중인 중국 기술기업은 BYD만이 아닙니다. 최근엔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의 등장이 큰 화제를 모았죠. AI 모델 개발의 필수 요소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규제를 가했음에도 저사양 반도체칩으로 미국 오픈AI에 필적하는 AI 추론 모델을 개발해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은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나라 정도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기술 강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었을까요? 세계 빅테크들은 이제 중국 기술기업을 견제하느라 바쁠 지경입니다. 한국 기술기업까지 하나둘 제치고 있는 중국 ‘레드 테크’의 면면들,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전기차·로봇서 AI까지…中 레드테크 '진격'
메모리 반도체 한국의 경쟁력도 '흔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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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5’에는 일상생활을 요긴하게 돕는 로봇들이 대거 출품됐습니다. 잔디 깎기, 집·수영장 청소, 아동교육 등 용도의 로봇이 전시된 생활로봇관에 관람객이 몰렸는데요, 대부분 중국산이었습니다. “중국 선전에서 만든 로봇이 미국 안방을 휩쓴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죠. 중국의 바둑 로봇 ‘센스로봇’도 화제였습니다.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개발한 것은 구글이었는데, 정작 여기에 로봇 기술을 결합한 것은 중국 기업이었습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이 행사의 기조연설을 통해 로봇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하며 로봇 14개를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 6개가 중국산이었습니다.

재평가받는 중국 테크기업

중국 첨단기술의 약진은 전기차(자율주행차), 이차전지, 로봇 등에서 이제는 AI 분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투자 없이도 AI 추론 모델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중국 ‘딥시크’의 등장(지난 1월 말)이 대표적입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인 바이두도 딥시크에 필적하는 추론 모델 ‘어니 X1’을 최근 선보였습니다.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가 AI 분야에서도 본격화한 겁니다. 중국 내 AI 기업은 4700개가 넘는데, 딥시크는 이 중 하나일 뿐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제2의 딥시크’라는 호평을 받는 ‘마누스’라는 생성형 AI도 오픈AI의 챗GPT 최신 모델에 뒤지지 않는다는군요. 사용자의 지시나 개입 없이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죠. “여행 일정을 짜달라”, 또는 “기업의 재무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관심은 금융투자 업계에서도 뚜렷이 감지됩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10대 기술주를 이른바 ‘테리픽(Terrific) 10’이라 명명했습니다. 알리바바, 텐센트, BYD, 샤오미, 지리차, 바이두, 징둥닷컴, 메이투안, SMIC, 넷이즈 등 중국 10개 기업의 기술력이 미국의 애플, 엔비디아, 메타, 알파벳 등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훌륭한) 7’에 못지않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믿고 투자해보라는 거죠. 샤오미는 전기차 ‘SU7’까지 출시하며 사업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장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이런 샤오미와 전기차 기술협력을 논의한다니 더욱 관심이 쏠립니다.

최근엔 미국 CNBC에서 “중국의 ‘팹(Fab) 4’가 미국 ‘매그니피센트 7’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알리바바, 샤오미, 텐센트, 바이두 등 굉장한(Fabulous) 4개 테크기업의 주가가 치솟고 있는데, 미국 M7의 주가는 큰 하락 폭을 보였기 때문이죠. 딥시크의 출현 이후 중국의 기술 경쟁력에 대한 재평가와 찬사가 이어지는 분위기입니다.

‘패스트 팔로어’, ‘퍼스트 무버’ 동시에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는 우리 경제와 산업엔 큰 위협 요소입니다. 반도체 분야 중국의 도전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기업이 독점해온 메모리 반도체 D램 시장에서 중국의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요. 2020년만 해도 전무한 이 회사의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5%까지 늘었고, 올해는 12%까지 확장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한국이 고가 반도체 시장에선 미국 마이크론에, 저가 시장에선 중국 업체의 공세에 넛크래커 상황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넛크래커는 한 나라의 경제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여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경제용어입니다. ‘넥스트 반도체’라며 심혈을 쏟아온 이차전지(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이미 1위 자리를 넘겨줬어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의 지난해 유럽시장 점유율도 45.1%로, 중국 업체(49.7%)에 처음으로 역전당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 기업은 첨단 분야 선발 기업을 따라잡으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과 함께 기술 자립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을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이게 중국 산업의 무서운 경쟁력입니다.NIE 포인트1.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확인한 경험이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2. ‘패스트 팔로어’와 ‘퍼스트 무버’라는 용어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알아보자.

3.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 된 과정을 살펴보고,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보자.과학기술 중시하는 中성장전략이 원동력
'선 발전, 후 규제' 실용적 사고도 기여했죠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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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첨단기술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 시스템이 결합된 중국은 기업과 시장이 성장을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제발전 모델과는 다릅니다. 국가 내지 정부부문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민간의 역량이 아직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정부의 기여도는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정부가 스마트한 장기 전략을 세우고 과감한 투자를 유도한 점이 중국 첨단기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이견은 없습니다.

10년 전 준비한 AI 발전 계획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의 혁신을 동력 삼아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에 수립한 ‘중국 제조 2025’ 계획입니다. 이는 저사양 기술, 저가 제품 생산국인 중국을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국으로 바꿔나간다는 산업정책이었습니다. 2025년까지 인공지능(AI), 5세대 통신(5G), 전기차, 반도체 등 분야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고, 이런 부문의 부품·소재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였습니다. 중국은 이 목표를 대부분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이미 2023년에 전기차 1000만 대 판매를 달성해 당초 목표를 3배 초과했죠.

정부가 장기 비전과 전략적 목표, 분야를 제시하면 기업은 자신의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혁신을 추구합니다.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는 대규모의 보조금 지급, 국유기업의 사업 참여 확대, 해외 첨단기술 확보 등으로 글로벌 기술격차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분야별 글로벌 1위 기술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 고속 성장 시기의 전략과 흡사한데요,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의 당과 정부의 핵심 간부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많다는 겁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정부 고위직에 등용되고, 관련한 산업정책을 짜온 데서 경쟁력이 생겨난 측면이 있어요.

구글의 AI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쳐진 해가 2016년이었습니다. 중국은 기민하게도 다음 해인 2017년 바로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만듭니다.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2020년까지 글로벌 수준, 2030년에는 세계 최고가 되는 걸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생성형AI 딥시크가 출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나 선진국이 중국 같은 국가 주도형 시장경제 모델을 본받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정부가 기술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합니다.

미국 위협하는 기술 인재 풀

다음으로 중국의 대규모 내수시장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데이터 관련 규제를 들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인구 14억 명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사용자 기반(10억 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개발에서 중요한 시험장(테스트베드)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데이터 보호정책으로 인해 기업은 인터넷 사용자의 각종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죠.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중국 기업은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밖에 산업이 발전하는 초기엔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 정부의 ‘선(先)발전, 후(後)규제’ 방침도 역할을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혁신적 창업 생태계와 기술 인재 육성 노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요. 중국에선 아이디어 하나만 좋으면 스타트업을 세울 수 있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젊은이들은 의사, 변호사 등 안정적 직업을 택하기보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는 욕구를 많이 갖고 있어요. 기술 인재가 더욱 쏟아질 수밖에 없죠. 중국에선 한 해에 40만 명 이상의 AI·컴퓨터공학 전공자를 배출하며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AI 인재 강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학술정보 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에 따르면 상위 1%의 영향력 있는 과학자 수에서 중국은 1405명으로, 미국(2507명)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75명으로 10위권 밖이었죠. 이들이 첨단기술 분야 기술 굴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NIE 포인트1. 중국 테크기업의 급부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토론해보자.

2. 우리나라 인재는 의대 입시로만 몰린다. 어떻게 해야 기술 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

3. 중국 기술 인재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좀 더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