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은 다리를 받치는 기둥을 말한다. 교각 상판 구조물이라면 다리 기둥, 즉 교각 위에 얹어놓은 보의 일종이다. 교량은 보통 완성된 다리를 가리킨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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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안성 고속도로 ‘교각 붕괴 사고’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오전 경기 안성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각 상판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지난달 25일 경기 안성의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각 위 철근 구조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속보로 앞다퉈 내보냈다.‘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언론사마다 사고를 조금씩 다른 말로 전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무너진 것이 교각인지, 교각 상판 구조물인지, 교량인지 제각각이다. 교각은 다리를 받치는 기둥을 말한다. 교각 상판 구조물이라면 다리 기둥, 즉 교각 위에 얹어놓은 보의 일종이다. 교량은 보통 완성된 다리를 가리킨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표현은 교각 상판 구조물 정도일 것이다.

‘교각’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쓰지 않아 정보전달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통사고 기사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남 공주시 대전·당진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유조 차량 사고에서도 같은 오류가 반복됐다. 이 사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던 탱크로리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다리 난간에 부딪혀 4000L가량의 기름이 유출됐다. 많은 언론이 이를 “교각에 부딪혀…” 식으로 표현했다. 다리 위를 달리던 차량이 ‘교각’에 부딪힐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각 붕괴’와 ‘교각 상판 구조물 붕괴’는 전혀 다른 말이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교(橋)’와 ‘각(脚)’은 순우리말로 둘 다 ‘다리’다. 형태는 같지만 서로 다른 말이다. 교(橋)는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에 음을 나타내는 ‘높을 교(喬)’로 이뤄졌다. ‘나무로 만든, 물 위를 건널 수 있도록 높게 세운 시설물’임을 나타낸다. 각(脚)은 몸통 아래 허벅지부터 발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 변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육달월은 고기 육(肉) 자가 변형된 것으로 같은 글자다. ‘다리 각’을 비롯해 ‘배 복(腹)’, ‘허파 폐(肺)’, ‘밥통 위(胃)’, ‘살찔 비(肥)’ 등 우리 몸과 관련 있는 글자에는 모두 육달월 변이 들어가 있다.글쓰기의 시작은 정확한 단어 선택‘교량(橋梁)’은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를 말한다. ‘다리 교(橋)’에 ‘들보 량(梁)’이 결합했다. ‘들보’란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질러 중심축을 잡는 나무를 가리킨다. 집을 지을 때 여러 개의 들보를 설치하는데 그중 가장 큰 들보가 ‘대들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한 나라나 한 집안 또는 한 단체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됐다.

‘동량(棟梁)’도 비슷하다. 마룻대(棟)와 들보(梁)를 아울러 이른다. 이 역시 의미가 확대돼 ‘마룻대와 들보로 쓸 만한 재목이라는 뜻으로, 집안이나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을 인재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어린이들”처럼 쓰인다.

‘난간(欄干)’은 층계, 다리, 마루 따위의 가장자리에 일정한 높이로 막아 세우는 구조물을 나타낸다.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막게 설치한다. 다리 위 교통사고는 이 난간에 부딪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교각에 부딪혔다”고 쓴다면 말의 뜻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글쓰기의 시작은 ‘단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올바른 단어를 선택하려면 말의 정확한 의미와 쓰임새를 알아야 한다. 가령 ‘유명세(有名稅)’는 ‘치르다’와 어울리는데 “유명세를 떨치다” 식으로 쓰는 예가 그렇다. 이는 유명세의 ‘세’를 마치 ‘세력 세(勢)’인 줄 착각한 데서 비롯한 오류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유통가에 ‘짝퉁 논란’이 일자 “유통업체들이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 ‘정책’이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부 또는 정치권에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에서는 경영 전략이나 방침, 지침 등을 문맥에 따라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