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는 정부 전체를 아우름, 즉 정부 내 각 부처를 아우른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범부처’는 부처 내 각 부서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말이라 개념을 엄격히 구별해 써야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경DB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경DB
“정부는 18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제6차 수출전략회의를 열고 ‘범부처 비상 수출 대책’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범부처 비상 수출 대책’을 발표했다. 이틀 뒤인 20일엔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수출 동향 점검 회의에서 다시 “지난 18일 발표한 ‘범정부 비상 수출 대책’을 속도감 있게 이행하겠다”고 말했다.‘범부처’는 부처 내 각 부서를 아우름언론을 통해 전해진 정부 발표에는 주목할 만한 표현상 차이가 있다. 애초에 ‘범부처’ 대책으로 발표한 것을 나중엔 ‘범정부’ 대책이라고 했다. 맥락상 두 말은 같은 의미로 쓰였다.

비상 수출 대책을 위해 정부의 한두 개 부처가 아니라 모든 부처가 함께 대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범부처’와 ‘범정부’는 같은 말일까? 부처와 정부가 서로 다른 말인데, 범부처와 범정부가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잘못 쓴 말이라고 봐야 한다.

요즘 언론에서 ‘범부처’란 말을 자주 쓴다. ‘범정부’란 표현도 함께 나온다. “물가 안정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총리는 수해 대책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당부했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범정부’를 ‘정부의 전체를 아우름’으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정부의 각 부처들을 하나로 아우름’으로 풀이한다. 즉 정부의 특정 부처나 일부 부처가 아니라 정부 각 부처를 두루 아우른다는 뜻이다.

“정부, 봄철 미세먼지 범부처 총력 대응.” “지방 성장 거점, 범부처 협력으로 활성화한다.” 이런 문장에 쓰인 ‘범부처’는 ‘범정부’와 어떻게 다를까? ‘범부처’는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 이 말이 올라 있다. 정식 단어로 인정받기 이전 단계인 셈이다. 그 풀이가 논란의 대상이다.

‘범(汎)-’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다양한 우리말 파생어를 낳는다. 어떤 지역 전체를 나타내는 말 앞에 붙어서는 ‘널리 그 전체에 걸치는’이란 뜻을 더해준다. 범태평양, 범세계적, 범국가적, 범현대가(家), 범삼성가 식으로 쓴다.

‘범정부’와 ‘범부처’는 서로 다른 말인데, 그것을 구별하는 단서는 접두사 ‘범-’의 의미 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널리 온 세계에 관계되는 것을 가리킬 때 ‘범세계적’이라고 한다. 이를 ‘범국가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 특정 국가에서 ‘범국가적’이라고 할 때는 그 나라 전체에 관련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 전체를 아울러 모든 부처가 동원되는 정책이나 집행을 말할 때는 ‘범정부’라고 한다. 반면에 ‘범부처’라는 것은 특정 부처의 조직 전체를 아우를 때 쓰는 말이다. 가령 기획재정부에서 ‘범부처 차원’으로 대처한다고 하면 기획재정부 산하의 모든 부서와 관련 조직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말 논리적·합리적으로 사용해야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2016년 <우리말샘>에 올려놓은 ‘범부처’는 이런 쓰임새와 많이 다르다. 그 풀이를 ‘모든 부처에 다 걸침’으로 하고, “폭염·홍수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새로운 ‘범부처’ 대책이 나온다”를 용례로 다뤘다. 이는 우리가 살핀 바로 따지면 ‘범정부’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니 ‘범부처’의 풀이와 용법을 이렇게 하면 일반인이 볼 때 ‘범정부’ 쓰임새와 헷갈리게 된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정리하자면 ‘범정부’는 정부 전체를 아우름, 즉 정부 내 각 부처를 아우른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범부처’는 부처 내 각 부서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말이라 개념을 엄격히 구별해 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이 과학적인 언어가 되고,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추게 된다. 이를 소홀히 하면 대충 통하는 말,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표현이 자꾸 생겨난다. 그리되면 우리말이 언어로서의 경쟁력을 잃는다. 외래어 남용을 탓하기 전에 우리말을 강하게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