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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 내 한류 콘텐츠의 유통을 금지한 한한령(限韓令)이 이르면 오는 5월께 풀릴 수 있다고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보도했습니다. 오는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지가 관심인데요, 한한령 해제는 그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계기입니다. 시 주석은 지난달 초 중국 하얼빈에서 만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양국) 문화 교류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한령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우리나라에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제) 배치가 결정될 때 중국 측이 반대와 항의의 표시로 시작됐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우리나라 관광·면세점·화장품 등 업계가 큰 타격을 받으며 한한령이란 용어가 정말 많이 회자됐습니다. 사드 기지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 사업을 모두 정리했고, 관련 손실이 10조원을 넘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 산업계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 지역을 넓히며 충격파를 줄여갔습니다. 지금은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관세 전쟁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어서 한한령 해제는 우리 경제에 분명 이득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보복 성격이 강한 한한령을 경제적 측면에선 어떻게 봐야 할까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높여 보호주의를 강화하는데, 이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런 부분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소비재 수출·관광업 피해 준 한한령
정치적 목적이 강한 비관세장벽이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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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한령’을 경제적 측면에선 어떻게 볼 수 있을 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한한령은 ‘비관세장벽’의 일종입니다. 정부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해 국제무역을 제한하는 것을 무역장벽(trade barrier)이라고 합니다. 이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는 관세장벽(tariff barrier), 관세 이외에 수입 수량 제한이나 기술 장벽 등을 통해 수입을 규제하는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수출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비관세장벽도 있지만, 수입을 제한하는 비관세장벽이 일반적입니다.

다양한 방식의 비관세장벽

비관세장벽은 통관·인증·환경·위생검역 등 분야에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될 때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합니다. 이게 대표적 비관세장벽입니다. 또 수출 상품의 가격을 원가 이하로 밀어내는 것을 덤핑 수출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 반덤핑 제재를 가하는 것도 비관세장벽이죠. 이 밖에 수입허가 절차 강화 등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한한령도 관세의 부과 없이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을 제한하기 때문에 비관세장벽에 속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비관세장벽과 다른 점도 많습니다. 먼저 중국 정부가 공식화한 사항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는 지금도 한한령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비관세장벽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한국만 선별해 규제하는 한한령은 차이를 보입니다. 또 일반적 비관세장벽은 광범위한 상품·서비스에 적용되는 반면 한한령은 주로 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돼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비관세장벽은 경제적 목적이 강한 데 반해 한한령은 정치적 목적을 앞세웠다는 점입니다.

한국만 겨냥한 노림수

한한령은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의 핵 개발이 원인이었습니다. 2016년 1월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우리나라와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7월 경북 성주에 사드 기지를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은 사드가 만주 지역 중국 군기지를 겨냥한 것이라며 반발했고, 한류 콘텐츠의 상영과 공연·광고·공동 제작 등을 전면 금지하며 보복을 가해왔죠. 다음 해 3월부터는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이 중단돼 우리나라 관광업계와 면세점의 피해가 커졌습니다. 제조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세관의 통관검사 지연 등으로 한국 기업의 중국 수출이 애를 먹었죠. 작년 초엔 현대차가 중국 충칭 공장을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한한령은 그러나 한국 기업에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K-콘텐츠 산업은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동남아·북미·유럽 등지로 수출시장을 넓혀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류가 진정한 글로벌 콘텐츠로 거듭났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습니다. 한 해 800만 명에 이르던 중국인 관광객 수는 한한령 직후 반토막 나기도 했지만, 개별 관광이 늘면서 600만 명대를 회복했습니다. 많이 둔감해진 한한령을 왜 이제 와서 해제하려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밀리던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성이 커졌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한한령 해제의 경제적 실익이 적지는 않을 겁니다.

‘힘의 논리’ 앞세운 무역 보복

중국과 일본은 과거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비관세장벽을 세워 힘의 논리를 밀어붙인 적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 우리 정부가 마늘 농가 피해를 우려해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며 무역 보복을 가했습니다. 최근엔 2019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관련 장비 수출 제한이 그런 예입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그해 8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입 간소화 국가 목록)에서 제외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핵심 부품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막아선 거죠. NIE 포인트1. 한한령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관세와 비관세장벽의 차이점에 대해 정리해보자.

3.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간의 무역전쟁 사례를 찾아보자. 자유무역 시대에 외려 증가한 비관세장벽
美 관세전쟁까지 돌입…세계 경제 위기감
러시아 전통 나무인형 ‘마트료시카’에 그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러시아 전통 나무인형 ‘마트료시카’에 그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이제는 비관세장벽이 갈수록 중요해진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부흥을 위해 자유무역을 적극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다자간 무역협상 확대도 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죠. 선진국의 평균 관세율은 1950년 35%에서 1994년 8.6%, 지금은 2%대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비관세장벽을 속속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자유무역시대에 비관세장벽이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후생손실 일으키는 비관세장벽

비관세장벽은 자국 국민의 안전과 위생·건강, 소비자후생 등을 향상시킨다는 명분까지 내세웁니다. 수입품을 심사할 때 수출국의 노동·생명 환경을 따지고, 기술적 표준의 만족 여부도 중요하게 봅니다. 최근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정책까지 가세했습니다. 2023년 한 해에만 세계에서 총 2366개의 환경 관련 비관세장벽이 도입됐습니다. 이는 세계 무역량의 26.4%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자동차·중공업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영향을 받고 있죠.

비관세장벽은 기업엔 일종의 규제입니다. 비관세장벽이 많은 나라에 수출하려면 기업은 추가로 비용을 더 들여야 합니다. 이를 경제학에선 순응비용(compliance cost)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각국의 무역비용을 증가시켜 활발한 세계 무역을 가로막습니다. 미주개발은행(IDB)에 따르면 수출기업이 비관세장벽에 10% 더 노출될 경우 수출량이 6% 감소하고, 고용도 2% 줄어든다고 합니다. 자유경쟁이 제한되면 경제의 효율성도 떨어지겠죠? 무역을 통한 국제경쟁의 기회가 적어지면 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그런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론 경제성장을 어렵게 한다는 점입니다. 국내 산업이 보호받는 데만 익숙해지면서 국제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어요. 이 모든 부작용을 종합한 개념이 후생 손실(welfare loss)입니다. 고소득 국가가 중간소득 국가에 대해 비관세조치를 50% 증가시키면 양국 그룹 모두 1년 안에 후생 손실을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

비관세장벽에 부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 간 무역 거래에선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출하려는 나라의 기술과 관련한 규제, 표준화 정책 등의 정보가 수출기업에 충분치 않은 경우죠. 이때 관련 비관세장벽은 수출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는 무역을 늘리는 요소가 될 수 있죠.

강력한 보호무역 수단은 관세

비관세장벽은 무역을 제한하는 효과가 관세장벽보다 크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관세는 법률 개정을 통해 변경해야 하지만, 비관세장벽은 신속하게 도입·변경·폐지할 수 있습니다. 또 투명하게 공개할 세율이 없고, 식별하기도 어렵습니다. 한한령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관세는 WTO 등 국제기구를 통해 규제할 수 있지만, 비관세장벽은 국가 간 합의나 규제가 어렵습니다. 이런 비관세장벽을 세우면 관세율을 12% 적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수입국 입장에선 당연히 비관세장벽을 강화하려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왜 출범하자마자 관세율을 급격히 높이는 ‘관세전쟁’을 세계 각국에 선포했을까요? 비관세장벽을 촘촘히 세우면 되지 않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비관세장벽이 왜 생겼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관세를 강하게 부과하지 못하면서 우회적으로 나온 게 비관세장벽이라고 설명했죠? 비관세장벽이 더 좋은 제도라 확산된 게 아닙니다. 비관세장벽은 수입국에서도 수입량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부과할 수만 있다면 관세가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강력한 보호무역 수단입니다. 미국은 관세율을 높여 수입을 줄이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세계로 발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미국으로 들어와 상품을 생산하라고 압박하는 겁니다. NIE 포인트1. 비관세장벽의 종류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자.

2. 비관세장벽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없었는지 알아보자.

3. 보호무역주의와 신보호무역주의의 개념을 비교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