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물 논술 강의노트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③ 개인과 사회의 관계
금주에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사회문화> 및 <생활과 윤리>의 주제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에 대입하여 교과적 개념을 이해하고 논리적 판단능력을 함양하고자 합니다.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③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오랜 시간 유지되면 일종의 사회 구조가 형성됩니다. 개인은 이러한 사회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회의 규범과 양식 아래에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개인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행동을 하여 사회의 안정화에 기여하기도 하고, 기존의 사회질서로부터 벗어난 저항적 행동으로 사회를 개혁하거나 일탈적 행위로 사회 질서를 훼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개인과 사회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게 되므로, 그 관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선 사회실재론은 사회가 개인의 외부에 실제로 존재하고 개인의 특성과는 다른 사회 자체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사회는 개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문제가 발생할 때 개인의 자력으로는 항거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사회명목론은 사회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만 있다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개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며 사회는 개인의 총합과 다름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계약설은 개인의 계약으로 국가가 성립한다는 것이므로 사회 명목론과 관련됩니다. 이 경우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능동적 주체성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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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트에 따르면 비록 사회학이 위계 상 그에 앞선 다른 과학들과 구분되는 특수한 방법론적 특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역시 앞의 여러 과학에 의존하는 것이다. 특히 위계 상 바로 아래에 있는 생물학에 매우 많이 의존한다. 생물학이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구분되는 점은 그것의 전체론적(holistic) 성격에 있다. 각 요소를 분리함으로써 발전되어온 물리학이나 화학과는 달리, 생물학은 유기적 전체를 연구함으로써 발달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학이 생물학과 공유하고 있는 점은 바로 이 유기적 측면과 유기적 단위에 대한 강조다. 사회를 각 부분으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연구한다면 질서의 조건에 대해서든 운동에 대해서든 사회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불가능하다고 콩트는 말한다. 사회학의 유일하고도 적실한 접근방식은 각 요소를 전체 체계라는 관점에서 관찰하는 데 있다.
콩트는 사회체계의 구성요소를 다루는 데서 개인을 기본적 요소로 보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과학적 정신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사회를 개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가 없다. 진정한 사회적 단위는 가족이다. 필요하다면 가족의 기반을 이루는 부부에게로 환원시킬 수는 있다. 개인의 행위와 성향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사회과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사회성은 이미 인간 본성 속에 있는 것이며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해설] [1]은 사회가 유기체와 같아 각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할 수 없다는 콩트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는 생물과 같은 하나의 조직체이므로 인간은 이미 사회적 성격을 담지하며 사회의 기본단위도 가족이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으로 사회를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 콩트의 논리입니다. 이는 사회의 성격에 따라 개인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하므로 개인과 사회 중 사회에 본질적 우세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재론 쪽으로 분류되겠죠?
[2]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권자의 지배 아래 두어 왔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지시하고, 또 우리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다만 고통과 쾌락뿐이다. 일면에서는 선악의 기준이, 다른 일면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이 두 옥좌(玉座)에 연결되어 있다. 공리성의 원리란 어떠한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되 그 행동이 당사자의 행복을 증대시켰는지 혹은 감소시켰는지에 따라서 판정하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서 이 원리는 행복을 촉진하는 것인지, 아니면 행복에 반하는 것인지 그 경향에 비추어서 모든 행동을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이 원리는 한 개인의 모든 행동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위 또는 어떤 정책에 대하여 주는 시인 또는 부인이,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킨다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경향에 의하여 결정되고, 또 그와 같은 경향에 비례하여 행하여지는 경우, 그 사람은 공리성의 원리의 가담자라고 말할 수 있다. 공리성의 원리에 적합한 행위는 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행위이다. 최소한 그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행위는 올바른 행위이며 적어도 나쁜 행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해설] 이는 벤담의 공리주의에 관한 설명입니다. [2]에 따르면 고통과 쾌락은 인간 행위의 생래적 지배원리이며, 이것이 개인의 도덕률과 행위 전반을 관장합니다. 따라서 (개인의 합인) 사회 또한 전체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을 방향성으로 삼게 되며, 이를 공리성의 원리라고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 경우에는 개인의 본성적 지향성이 사회의 방향성까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개인의 힘을 본질적으로 더 강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사회명목론으로 분류됩니다.
[3]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어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서로 싸우고 빼앗고 하여 양보란 없을 것이다. 나면서부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여 진실과 믿음은 사라진다. 또한 나면서부터 귀로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감각적 욕망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좇으면 무절제하게 되어 사회 규범으로 지켜야 할 예의나 규범의 형식과 이치(理致)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성질이나 감정에 맡겨 버린다는 것은 반드시 서로 싸우고 다투어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고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드시 군주와 스승이 법도로 교화하고 예의로 이끌어야 남에게 사양할 줄도 알고 사회의 질서를 지킬 줄도 알아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의 천성은 원래 악한 것이요, 선(善)이란 인위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구부러진 나무는 반드시 곧은 먹을 대고 불에 쬐어 바로잡아야 꼿꼿해지고, 무딘 칼은 반드시 숫돌에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도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바로잡히고, 예의를 얻어야 다스려질 것이니, 만일 스승이 없으면 편벽된 데로 기울어져 부정(不正)해질 것이요, 예의가 없으면 난폭해져서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이를 위하여 예의를 일으키고 법도를 세워서 성정(性情)을 교정하고 훈련함으로써 사회규범에 따르고 도리에 맞도록 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더 깊은 사고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를 금주의 책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책이 어렵다면 로랑 베그의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권해보니, 시간이 된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