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물 논술 강의노트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 읽기 ② 법치주의
정치와 법 교과서의 1단원 주제들은 논술고사의 빈출 주제입니다. 법의 역할과 발전 단계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법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민주국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할 때 법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법은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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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최고 이념으로, 평등을 바탕으로 한다. 평등을 바탕으로 한 정의는 다시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나뉜다. 평균적 정의는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우해주는 형식적 평등을 통해 실현된다. 반면 배분적 정의는 상대적·비례적·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합목적성 법은 시대나 국가가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법적 안정성 개인의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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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법의 기본 요소들이 법치주의의 첫 시작부터 완비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법치주의가 발달하면서 초기에는 법 자체의 내용과 목적보다 의회 제정이라는 형식적 합법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왕정이나 독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에서였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법의 목적과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법의 형식적 요소를 중시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사건을 생각해봅시다.

[사건1] 영국에는 무분별한 동물 남용과 학대에 반대해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벌이는 동물해방론자들의 단체가 있다. ‘동물해방전선(Animal Liberation Front)’과 ‘동물학대방지왕립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가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의 회원들은 식용 고기의 생산을 위한 공장식 농장, 모피 공장, 사냥터, 동물실험실 등에서 행해지는 인간에 의한 동물 학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특히 ‘동물해방전선’ 회원들은 동물 학대에 대해 항의서를 제출한다거나 데모를 벌이는 등의 간접적이고 평화로운 방법 대신에 보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투쟁한다. 그들은 모피 공장을 습격해 그 안에 있던 동물들을 풀어주거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실을 파괴하기도 한다. 또 한 번은 바다표범을 잡으러 나갈 예정인 배에 구멍을 내 그들의 생업을 방해한 적도 있다. 그 회원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른 생명체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줬다. 결국 다수의 회원이 체포되었으며,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 사건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나요?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치 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는 없지요. 만약 자기 가치와 욕구를 우선적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위 사건1과 같은 충돌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합의된 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노력은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본 약속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법의 문제점이 있음에도 법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는 없겠지요? 다음 사건을 살펴봅시다.

[사건2]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에서 흑인 노예 해방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 앨라배마주(州)는 다른 곳에 비해 흑백 인종 차별이 여전히 심했다. 1955년 어느 날, 로자 파크스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세 정류장 뒤에 탑승한 백인 남성이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앨라배마주의 ‘인종 분리법’에 따르면 흑인은 버스 요금을 지불한 후 버스 뒤쪽에 앉거나, 버스 안에 백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좌석 한 줄을 전부 비워두어야 했다. 그러나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백인 남성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고, 이를 이유로 체포되어 법원에서 14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무엇을 시사합니까? 법이 민주적 절차를 거친 합의라고 하더라도 다수결과 투표권의 특성상 해당 시기의 다수인 집단 혹은 주류층의 견해를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소수의 견해나 권리는 입법과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지요. 또한 기존의 관습이 비윤리적이라고 하더라도 관행화되었을 때, 무비판적으로 법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종분리법은 그러한 점을 지적합니다. 백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법은 백인 집단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정의로운 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별받는 집단에서는 부조리의 반작용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정된 법을 중심으로 사법과 행정이 진행되어 차별받는 소수집단의 개인이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법의 뒷받침으로 인해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각 개인의 인식이 형성될 위험도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합법성을 가졌으나 정의에 어긋나는 법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933년 독일 나치 정권의 입법권 위임, 즉 수권법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나치 독일의 수권법의 정식 명칭은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로, 이 법은 “정부에 입법권을 부여하며, 의회 및 대통령의 권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한 정부 입법이 헌법에 위반되더라도 유효하고, 법령 해석권이 총리(히틀러)에게 있으며,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의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국민주권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전체주의로 오염시킨 이 수권법은 반인권적인 법과 명령을 용납하게 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고통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처럼 법치주의의 형식성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 널리 알려진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입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에 대한 인간의 복종 심리를 탐구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징벌이 학습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처럼 꾸몄지만, 실제 목적은 권위자의 명령에 사람들이 얼마나 따르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에서 참가자는 교사 역할을 맡고, 학생 역할은 연기자가 담당했습니다. 교사는 학생이 단어 암기 테스트에서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지시받았으며, 충격의 강도는 15볼트씩 증가했습니다. 학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150볼트에서는 실험 중단을 요청했으며, 330볼트 이상에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는 “책임은 내가 진다”며 참가자에게 계속 충격을 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밀그램은 대부분의 참가자가 150볼트 이상에서 실험을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험 결과 40명 모두가 300볼트까지 충격을 가했고, 이 중 26명은 450볼트까지 복종했습니다. 이 결과는 권위자의 지시에 대해 사람들이 예상보다 쉽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이 실험은 조작된 정황이 발견되어 결과를 오염시켰지만, 그래도 그 함의만큼은 분명히 와닿습니다. 동영상 웹사이트에도 많이 업로드되어 있으니 내용을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웹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너무 와닿는 댓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학생이 도덕 선생님께 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도덕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이 여러 답변을 했고, 이에 선생님은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영상을 보여주셨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기 질문에 ‘사람을 왜 죽여요?’라고 물어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죠? 인간은 쉽게 무비판적으로 상황을 수용하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권위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쉽게 복종하고야 맙니다. 법치주의는 우리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스스로의 능동성과 비판적 사유를 고양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법치주의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