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사랑의 비밀
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감정 중 하나로, 사전적 뜻은 '타인을 사랑하거나 특정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대상에 따라 사랑을 가족 간 사랑, 연인 간 사랑, 친구나 동료와의 우정, 동물이나 자연을 향한 사랑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종류야 어찌 됐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사랑이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똑같다.
이렇게 숭고한 감정인 사랑에 감히 순위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강도의 차이는 있어 보인다. 예컨대 친구와의 우정은 만남이 소원해지거나 더 친한 친구가 생기면 사그라들지만,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부모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유형에 따라 강도도 다를까? 오랜 시간 사람의 감정과 신체 반응의 관계를 연구해온 핀란드 알토대 연구팀이 최근 사랑의 유형에 따른 뇌 활동 강도와 영역을 분석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놨다. 국제학술지 <대뇌피질(Cerebral Cortex)> 8월호에 실린 연구다.연구팀은 먼저 1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28~53세 사이의 성인 남녀 55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모두 평균 연애 기간이 11.9년인 연인이 있었으며, 27명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뇌 활동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fMRI는 활성화된 뇌 부위에 혈류의 양이 증가하는 원리를 이용해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됐는지 측정하는 기술로 혈류량이 적을수록 파랗게, 많을수록 붉게 나타난다.
연구에서 살펴본 사랑의 유형(대상)은 연인, 자녀, 친구, 낯선 사람, 반려동물, 자연 등 총 여섯 종류다. 연구팀은 피실험자에게 각 유형에 관한 짧은 이야기와 사랑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오디오를 통해 들려주며 뇌의 활동을 살폈다. 예컨대 자녀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갓 태어난 당신의 아기를 처음 봅니다. 아기는 부드럽고 건강하고, 강인하며 당신 인생의 가장 큰 경이로움입니다. 당신은 이 작은 존재에 대해 사랑을 느낍니다” 같은 내용이었다.
실험 결과 여섯 가지 사랑 유형 중 자녀를 향한 사랑이 가장 강렬한 뇌 활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부모의 자녀 사랑은 모든 유형 중 유일하게 선조체(striatum) 영역을 활성화했다. 선조체는 보상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한 영역으로, 보상받을 때 선조체의 일부가 활성화돼 쾌감·만족감 등의 긍정적 감정을 유발한다. 자녀 사랑을 포함해 연인·친구 등 사람 간에 이뤄지는 사랑은 뇌 활성 영역이 매우 비슷하고 활성화 정도만 달랐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낯선 사람을 향한 연민 어린 사랑은 자녀나 친구를 향한 사랑보다 덜 보상적이며 뇌 활성도가 낮았다.
또한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사랑은 반려동물이나 자연을 향한 사랑 대비 측두-두정 접합부(측두엽과 두정엽이 만나는 부위로 다른 사람의 의도와 믿음을 판단하는 기능과 연관돼 있다)와 사회적 인지와 관련한 뇌 영역을 더 활성화했다. 반면 자연에 대한 사랑의 경우 보상 체계와 시각 영역은 활성화하고, 사회성 뇌 영역은 활성화하지 않았다. 사랑의 감정에 대한 뇌 활동이 대상에 대한 친밀도뿐 아니라 대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에서 사회성 영역이 더 활성화해 뇌파를 통해 그 사람이 반려동물 주인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사랑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랑의 본질, 의식,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유도하거나 애착 장애, 우울증 또는 관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편 사랑은 유형에 따라 다른 신체 부위의 지각을 유발하기도 한다. 알토대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사랑의 인체 지도’에 따르면 27가지 사랑의 유형에서 공통으로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부위는 머리였고, 유형에 따라 다른 신체 부위가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강도가 강한 사랑일수록 가슴이 지각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억해주세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은 뇌의 특정 부위가 사용될 때 그 영역으로 가는 혈류의 양도 따라서 증가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어떤 부위의 신경이 활성화됐는지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핀란드 알토대 연구팀이 연인, 자녀, 친구, 낯선 사람, 반려동물, 자연 등 여섯 가지 대상을 향한 사랑을 느낄 때 뇌 활동 영역과 강도를 측정한 결과 부모의 자녀 사랑이 가장 강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사랑의 경우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비슷했고, 특히 사회적 인지와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됐다. 자연을 향한 사랑은 보상 체계와 시각 영역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사회성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