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유전자조작 바나나, 첫 '식용' 인정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꾼 바나나를 먹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최근 호주 유전기술규제처(OGTR)는 퀸즐랜드공대 연구팀에 파나마병에 내성을 지닌 유전자변형(Genetically Modified, 이하 GM) 바나나의 상업적 재배를 승인했다. 앞서 호주·뉴질랜드식품기준청(FSANZ)은 이 바나나에 대해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하다며 호주와 뉴질랜드 내 판매를 허가했다. GM 바나나가 세계 최초로 ‘식용’ 인정을 받은 것이다. 유전자변형식품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GM 바나나를 만들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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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바나나는 일반 작물처럼 씨앗을 심어서 재배할 수 없다. 그래서 바나나를 수확한 후 지제부(줄기가 땅에 접한 부분)의 가지를 잘라 옮겨 심는 방식으로 번식시킨다. 필연적으로 새로 자라는 바나나나무는 마치 복사한 것처럼 기존 나무의 유전자를 유지하는데, 이는 곧 비슷한 품종의 바나나는 유전자가 거의 동일하다는 뜻이다. 씨가 사실상 없는 바나나를 계속 재배할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자칫 이 품종에 치명적인 병이 퍼질 경우 일제히 피해를 볼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 내성을 지닌 개체가 있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바나나는 실제로 이런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바나나 품종은 캐번디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바나나의 50% 가까이 차지한다. 캐번디시 전에는 그로 미셸이라는 품종이 널리 재배됐다. 그런데 1950년께 파나마병(바나나 나무뿌리가 썩는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 푸사륨(TR1)이 퍼지면서 저항력이 높던 캐번디시가 그로 미셸을 대체했다. 그런데 캐번디시도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캐번디시도 버티지 못하는 푸사륨 변종 TR4가 대만에서 시작해 호주와 동남아시아, 중동으로 퍼진 것이다. 학자들은 TR4에 내성을 지닌 새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지 않으면 사실상 전 세계 바나나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교배를 통해서 단기간에 TR4에 내성이 있는 바나나 품종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직접적인 방법은 바나나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꿔 저항성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 호주 당국으로부터 GM 바나나 재배 허가를 받은 퀸즐랜드공대 연구팀이 이 연구를 20년 이상 수행했다.
연구팀은 지난 2017년 캐번디시 바나나의 유전자(RGA2-3)를 변형시켜 TR4에 저항성을 지닌 품종 QCAV-4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를 통해 발표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야생 바나나에서 찾은 유전자를 캐번디시 품종에 넣었는데, TR4가 퍼진 토양에서 3년 동안 잘 자랐다는 내용이다. 데이터상으로도 캐번디시 바나나와 비교하면 감염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연구팀은 이후 QCAV-4 바나나를 호주 북부에서 7년 이상 재배해 TR4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것을 입증했고, 이에 따라 호주 당국으로부터 재배 및 식용 허가를 받았다.
호주 당국이 승인했다고 해서 소비자가 GM 바나나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유전자변형식품은 각국의 관련 기관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지만,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고려해 최근에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 단백질 ‘크리스토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자를 편집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자체 유전자로 교정하기 때문에 유전자변형식품(GMO)과는 차이가 있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데일 교수는 “유전자 편집은 다양한 위협에 견딜 수 있는 품종을 만들 수 있어 바나나 같은 미래 먹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유전자 편집을 이용해 시가토카 균(바나나잎을 서서히 말려서 죽이고 바나나 열매를 이른 시기에 익게 하는 곰팡이로, 공기를 통해 확산된다)에 저항성이 있는 품종도 개발하고 싶다”고 전했다.√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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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