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힘 (2)
'-나'는 '-과(와)'와 달리 의미상 나열되는 사물 중 하나만 선택됨을 나타낸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면 둘 다 아우르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해, '자유나 평등'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만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과(와)'와 달리 의미상 나열되는 사물 중 하나만 선택됨을 나타낸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면 둘 다 아우르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해, '자유나 평등'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만 나타내는 것이다.

‘-과(와)’는 격조사와 접속조사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 격조사일 때는 ‘A와 ~하다’ 형태를 취한다. 이때 ‘-와’는 뒤에 오는 서술어를 꾸며주는 부사격조사다. 둘째, 접속조사일 때는 둘 이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두 번째 용법이다. 이를 자칫 “우리는 자유나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오류가 생길까? 두 말의 용법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접속조사다. 그런데 용법은 ‘-과(와)’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 이상의 사물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준다’는 점은 같다. 그래서 ‘-과(와)’와 ‘-나’를 ‘등위접속어’라고도 한다. 앞뒤에 오는 말이 같은 자격, 즉 명사면 명사끼리, 동사면 동사끼리, 구면 구끼리, 절이면 절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둘 중 하나가 이런 동급의 자격을 벗어나면 비문이 된다.
그런데 ‘-나’는 ‘-과(와)’와 달리 의미상 나열되는 사물 중 하나만 선택됨을 나타낸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면 둘 다 아우르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해, ‘자유나 평등’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만 나타내는 것이다. ‘-과(와)’는 영어의 ‘and’에 해당하고, ‘-나’는 ‘or’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구별하고 보면 누구나 아는 내용인데, 이걸 문장 속에서 다루다 보면 헷갈리는 것 같다.문법에 맞게 써야 세련된 문장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해보자. “AI의 발달이나 자동화의 확산은 많은 직업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비문이다. 왜일까? ‘A와 B’는 둘 다를 말한다. 이에 비해 ‘A나 B’라고 하면 둘 중 하나를 가리킨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듯이, 앞으로 기존의 직업을 사라지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은 ‘AI의 발달’ 그리고 ‘자동화의 확산’이다. 의미상 두 가지가 모두 그렇다는 얘기다. ‘AI의 발달’ 또는 ‘자동화의 확산’이 아니다. 따라서 “AI의 발달과 자동화의 확산은~”이라고 해야 한다. 모국어화자라면 문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이 둘을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