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44) 레버리지와 디레버리지
지난해 국내 기업들은 빚을 갚기 위해 유상증자를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렸다고 합니다.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섰기 때문이죠. 가계와 정부도 늘어난 빚을 어떻게 갚고 재정을 꾸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빚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이지머니(easy money)의 시대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기준금리를 0% 수준으로 내리고 국채를 매입하는 등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완화를 시행했습니다. 부동산과 금융시장 충격으로 초유의 경기침체에 대해 극약 처방을 한 것이지요. 바야흐로 ‘이지머니’의 시작이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었음에도 중앙은행은 또 침체에 빠지지 않을까 하여 긴축을 주저했습니다. 경제주체들은 저금리를 바탕으로 막대한 대출을 받아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했지요. 이렇게 대출을 해서 수익을 내는 과정을 ‘레버리지(leverage)’라고 합니다.(144) 레버리지와 디레버리지
예를 들어 100억 원을 투자해 10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 자기자본이익률은 10%입니다. 하지만 자기자본 50억 원에 타인자본 50억 원을 더해 10억 원의 수익을 낸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20%로 뛰지요. 이처럼 경제주체들은 각종 자산에 투자를 늘리거나 사업 규모를 키워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이자를 감당했습니다. 장밋빛 미래는 지속할 것 같았지요. 하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긴축 시대 맞아 부채 줄일 방법 찾아야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물가상승이 급격히 진행됐지요. 연준도 처음엔 일시적일 줄 알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깜짝 놀라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섰습니다. 1970년대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의 급격한 금리인상 시절 이후 긴축의 시대가 다시 시작됐지요. 그러면 경제주체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빚을 갚아 규모를 줄이거나 성장을 해서 이자를 감당해야 하죠. 하지만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로 성장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때 방법은 부채를 줄여나가는 ‘디레버리지(deleverage)’입니다. 경제주체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보유 자산을 팔거나 빚을 상환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투자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하는 고통이 있지만, 빚이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면 파산하기에 부채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오히려 부채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2분기 말 총부채는 5956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73.1%를 기록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전년 동기 대비 부채가 증가한 유일한 나라(사진)가 되었지요. 경기침체기를 맞아 부채를 줄여야 하는 시점에 그에 걸맞은 정책을 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홍콩 법원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파산을 결정한 것도 과도하게 늘어난 빚이 가장 큰 요인이지요. 한국도 이와 같은 충격을 겪지 않으려면 선제적인 디레버리지로 위기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