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실드
TSMC가 지난 7월 30일 대만에서 개소한 글로벌 R&D센터. /한경DB
TSMC가 지난 7월 30일 대만에서 개소한 글로벌 R&D센터. /한경DB
“TSMC는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존재이며, 유사시에는 미국이 대만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대만중앙연구원 산하 유럽·미국학연구소(IEAS)가 지난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대만 성인의 44.6%가 이같이 답했다. TSMC는 1987년 대만에서 설립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만인들은 TSMC를 ‘자랑스러운 수출 기업’을 넘어 ‘국력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국제외교 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기 힘든 대만의 태생적 위협을 막아주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IEAS의 조사에서 응답자 중 9.3%만 “중국을 신뢰한다”고 했다.“재난 상황에서도 TSMC만큼은 정상 가동”실리콘 실드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반도체 방패’다. 탄탄한 반도체 기업이 국가안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 IT 전문가 크레이그 에디슨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용어다. TSMC 창업자인 장중머우 전 회장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대만인들은 TSMC로 인한 실리콘 실드가 대만을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TSMC의 반도체 공장이 파괴된다면 스마트폰, PC, 노트북, 게임기, 자동차, 항공기 등을 생산하는 전 세계 공장은 연쇄적으로 멈춰 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산업망이 마비되는 만큼, 서구권 강대국들이 대만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이라는 게 실리콘 실드의 논리다. TSMC가 가동을 중단하면 ‘세계의 제조 공장’인 중국 역시 큰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만 정부가 TSMC에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대만의 국무총리실 격인 행정원은 ‘2030년 1나노 공정 진입’을 6대 핵심 국가 전략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TSMC 공장이 들어설 지역에는 발전소를 증설하고 재생수 공장을 만드는 등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

2년 전 대만에 최악의 가뭄이 나타났을 때 대만 정부는 TSMC 공장 인근 농민들을 설득해 논으로 흐르던 물길을 반도체 공장 쪽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기업이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이 분야 석·박사급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아왔다.지금 세계는 반도체 산업 육성 경쟁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미·중 패권 경쟁이 끝나지 않는 가운데 반도체 산업은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서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등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국에서도 ‘실리콘 실드’를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대만 정부와 TSMC를 모델로 삼아 반도체 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고 미국과 EU의 고객사를 많이 유치한다면 국방예산 증대 이상의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