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디지털 경제와 생산성
평균생산성 증가는 모든 사람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아
기술발전이 생산성 향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한 현상이다. 전기가 동력원으로 상용화되었던 2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전기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데는 약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기라는 기술개발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그들의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의 진보가 ‘공유된 이득’으로 이어지리라는 믿음은 ‘생산성 밴드왜건’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밴드왜건이란 생산성을 높여주는 새로운 기계와 생산 방법이 임금도 높여준다는 개념이다. 이는 기술의 개발이 사업가와 자본가는 물론이고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의 이득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개념은 단순하다. 어느 기업이 생산적이 되면 생산량을 늘려 더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 고용 증가로 이어지고 노동 수요의 증가는 임금을 끌어올리게 된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포드와 GM이 도입한 새로운 기계 장비는 공장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재조직했으며, 더 좋은 제품을 선보였다. 그 결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고용이 급증했다.평균생산성 증가는 모든 사람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아
하지만 생산성 밴드왜건은 1970년대 중간부터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의 수요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 1인당 산출량이 증가하면 기업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유인이 생긴다는 개념이 생산성 밴드왜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근로자 1인당 생산성 증가가 반드시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인센티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를 더 채용할지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은 ‘한계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고용된 근로자가 얼마만큼 새롭게 생산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한 명의 평균생산성 개념인 평균생산성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평균생산성이 늘어도 한계생산성은 변하지 않거나 심지어 감소할 수도 있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재미난 비유로 평균생산성과 한계생산성을 설명한다. 미래의 공장에는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만 고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개밥을 주는 것이고, 개가 하는 일은 사람이 기계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공장의 생산량이 굉장히 많다면 근로자 1인당 생산성, 즉 평균생산성도 매우 높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거의 없다. 인간 근로자의 유일한 일은 개밥을 주는 것이어서 생산량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개와 사람 둘 다 해고해도 산출량에 영향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더 좋은 기계가 도입되면 근로자 1인당 평균생산성은 더 높아지지만, 사람과 개를 더 고용하거나 혹은 이들의 임금을 올려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술발전으로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평균생산성과 한계생산성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기업의 생산량이 아무리 증가하고 이로 인한 근로자 1인당 산출량이 높아져도 산업용 로봇을 도입한 결과라면, 그리고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비용보다 적게 든다면 평균생산성은 증가하지만 근로자는 덜 필요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사람을 대체하는 기계의 발달이 평균생산성을 높이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오히려 낮출 수 있다.
평균과 한계의 개념으로 비춰볼 때, 기술발전의 해법은 명확하다. 한계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노동을 대체할 목적으로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기보다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기계가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야 비로소 ‘혁신’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근본적인 방법은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노동력이 쓰일 수 있는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낸다면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 확대된다. 한계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과거 고용과 임금을 높인 패턴은 동일했다. 프로그래머, 데이터 분석가, IT 보안 전문가 등 지난 몇십 년 사이 빠르게 성장한 직종 중 상당수는 8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는 모두 새로운 기술 진보의 결과였으며, 고용 증가의 주된 요인이었다. 새로운 업무의 창출은 생산성 증가에도 기여했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생산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재조직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고, 이 모든 과정이 ‘공유된 번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결국 한계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