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대출금리에 비상식적인 ‘이상’이 생겨 이용자 사이에 논란이 빚어졌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 같은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를 책정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중·저신용자보다 신용 상태가 좋은 고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한 것이다. 통상 금융시장에서는 신용도가 높을수록 신용대출 금리가 낮아진다. 금융거래의 기본 논리와 정반대 현상이 이른바 제1금융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금리라는 돈 시장의 가격구조에 개입하면서 비롯됐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신용 상태가 좋지 못한 저신용자에게도 자금 대출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 요인이다. 하지만 금리역전은 오래 신용을 쌓아온 우량 고객에 대한 역차별이다. 신용여건에 반비례하는 금리 책정, 용인될 수 있나.[찬성] 서민 금융지원 과정의 파생적 결과…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노력 필요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가 의도적으로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이용자보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대출자에게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한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접근, 대출이 보다 쉽게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파생적 결과일 뿐이다. 취지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직전 정부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신용자가 금리 부담을 더 져야 한다는 발언을 해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런 취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라는 행정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통령의 발언은 고신용자가 높은 대출이자를 부담하고, 저신용자는 보다 싸게 은행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면서 금융시장을 한바탕 흔들었다. 사회적약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신용과 대출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기본이 안 된 얘기”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청와대는 곧 “안타깝다고 한 말이 잘못 전달됐다”라며 해명에 나섰고, 사태는 해프닝처럼 끝났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빚어지는 금리역전 현상은 그때와 다르다. 신용대출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점검 결과 고신용자로 쏠림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게 됐고, 카카오뱅크는 2023년 말까지 그 비중을 30%, 케이뱅크는 32%로 끌어올리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금융 취약층 보호·지원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비율을 맞추려다 보니 부득불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금리(최저 연 5.457%, 11월 초 기준)는 올라갔고,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리(최저 연 4.145%)는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금융 약자의 신용대출이 가능해진다. 감내해야 할 작은 부작용이다.[반대] 反시장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관치·반혁신 규제가 금융시장 왜곡두말할 것도 없이 전형적인 역차별이다. 시장원리와 거꾸로 가는 규제정책이 불러온 금융시장의 왜곡은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신용을 꾸준히 축적해온 고신용자의 이자 부담은 적다. 신용 관리를 소홀히 해왔거나 누적된 신용 관리 실적이 없는 금융소비자는 그 대가로 비싼 이자를 부담한다. 금융 선진국일수록 더하다. 신용카드 작동 원리도 마찬가지다. 금융산업 자체가 신용을 바탕으로 성장·발전한다. 이 같은 원리를 존중하고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때 한국의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융 선진국이 된다. 이런 기본 원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채 내세우는 ‘금융의 국제화’ ‘동북아 금융 허브’ 같은 정책 목표는 다 헛구호가 될 것이다.
기존에 대형 시중은행도 많은데 인터넷은행을 왜 도입했나. 금융시장에 혁신을 불러일으켜 금융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기껏 저신용자·고신용자 대출 비율 규제나 하면서 천편일률적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 대출에 대한 이런 규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 대출 비중은 개별 금융사의 독자적 영업 전략이고, 관행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출 비율을 규제한다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어느 쪽에 얼마나 대출해줬느냐는 ‘잔액’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에 따라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식의 ‘신규 취급액’ 기준이 옳다. 그래야 소급 논란도 없고, 대출이자의 역전에 따른 역차별 논란도 줄어든다. 취약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를 훼손하면 소탐대실, 교각살우의 우를 저지르게 된다. 더 큰 손해다.
서민·취약층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금융 약자 지원은 당당하게 국고로 지원하는 정책자금 확대나 대출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 등이 바람직하다. 은행의 대출 영업은 일종의 비즈니스 전략이고, 사업의 포트폴리오다.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직접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 관치금융이다. 이런 개입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하기 - 인터넷은행 출범 때 혁신 의지 어디 가고 경영 간섭만…장기로는 손해 2015년 정부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영업을 인가하면서 강조한 취지는 금융혁신이다. 그런데 혁신과는 거리가 먼 규제를 정부가 하고 있다. 온라인망을 통한 비대면 금융거래 등에서 혁신의 과정과 성과, 혜택이 고신용자들에게 집중되는 현실에는 딜레마 요인이 있다. 그렇다 해도 투박하고 거친 행정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인터넷은행이 신용카드나 펀드 판매 등 신규 사업을 벌이려면 감독당국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후발 주자인 인터넷은행까지 기존 전통 은행과 비슷한 규제를 받아 영업 여건이 나빠지고 은행의 건전성까지 악화되면 신용대출 여력도 줄어든다. 그 피해는 결국 금융 약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당장 눈앞만 볼 것이냐, 장기적으로 멀리까지 볼 것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 출범 때 정부 발표를 돌아보면 ‘혁신성’을 강조했을 뿐 ‘중·저신용자 대출’ ‘포용금융’ 같은 말은 없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라는 행정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통령의 발언은 고신용자가 높은 대출이자를 부담하고, 저신용자는 보다 싸게 은행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면서 금융시장을 한바탕 흔들었다. 사회적약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신용과 대출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기본이 안 된 얘기”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청와대는 곧 “안타깝다고 한 말이 잘못 전달됐다”라며 해명에 나섰고, 사태는 해프닝처럼 끝났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빚어지는 금리역전 현상은 그때와 다르다. 신용대출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점검 결과 고신용자로 쏠림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게 됐고, 카카오뱅크는 2023년 말까지 그 비중을 30%, 케이뱅크는 32%로 끌어올리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금융 취약층 보호·지원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비율을 맞추려다 보니 부득불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금리(최저 연 5.457%, 11월 초 기준)는 올라갔고,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리(최저 연 4.145%)는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금융 약자의 신용대출이 가능해진다. 감내해야 할 작은 부작용이다.[반대] 反시장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관치·반혁신 규제가 금융시장 왜곡두말할 것도 없이 전형적인 역차별이다. 시장원리와 거꾸로 가는 규제정책이 불러온 금융시장의 왜곡은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신용을 꾸준히 축적해온 고신용자의 이자 부담은 적다. 신용 관리를 소홀히 해왔거나 누적된 신용 관리 실적이 없는 금융소비자는 그 대가로 비싼 이자를 부담한다. 금융 선진국일수록 더하다. 신용카드 작동 원리도 마찬가지다. 금융산업 자체가 신용을 바탕으로 성장·발전한다. 이 같은 원리를 존중하고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때 한국의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융 선진국이 된다. 이런 기본 원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채 내세우는 ‘금융의 국제화’ ‘동북아 금융 허브’ 같은 정책 목표는 다 헛구호가 될 것이다.
기존에 대형 시중은행도 많은데 인터넷은행을 왜 도입했나. 금융시장에 혁신을 불러일으켜 금융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기껏 저신용자·고신용자 대출 비율 규제나 하면서 천편일률적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 대출에 대한 이런 규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 대출 비중은 개별 금융사의 독자적 영업 전략이고, 관행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출 비율을 규제한다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어느 쪽에 얼마나 대출해줬느냐는 ‘잔액’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에 따라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식의 ‘신규 취급액’ 기준이 옳다. 그래야 소급 논란도 없고, 대출이자의 역전에 따른 역차별 논란도 줄어든다. 취약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를 훼손하면 소탐대실, 교각살우의 우를 저지르게 된다. 더 큰 손해다.
서민·취약층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금융 약자 지원은 당당하게 국고로 지원하는 정책자금 확대나 대출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 등이 바람직하다. 은행의 대출 영업은 일종의 비즈니스 전략이고, 사업의 포트폴리오다.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직접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 관치금융이다. 이런 개입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하기 - 인터넷은행 출범 때 혁신 의지 어디 가고 경영 간섭만…장기로는 손해 2015년 정부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영업을 인가하면서 강조한 취지는 금융혁신이다. 그런데 혁신과는 거리가 먼 규제를 정부가 하고 있다. 온라인망을 통한 비대면 금융거래 등에서 혁신의 과정과 성과, 혜택이 고신용자들에게 집중되는 현실에는 딜레마 요인이 있다. 그렇다 해도 투박하고 거친 행정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인터넷은행이 신용카드나 펀드 판매 등 신규 사업을 벌이려면 감독당국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후발 주자인 인터넷은행까지 기존 전통 은행과 비슷한 규제를 받아 영업 여건이 나빠지고 은행의 건전성까지 악화되면 신용대출 여력도 줄어든다. 그 피해는 결국 금융 약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당장 눈앞만 볼 것이냐, 장기적으로 멀리까지 볼 것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 출범 때 정부 발표를 돌아보면 ‘혁신성’을 강조했을 뿐 ‘중·저신용자 대출’ ‘포용금융’ 같은 말은 없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