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디지털 경제와 혁신

혁신은 점진적이며, 발명과 다르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정책 설계 및 투자 전략 재점검해야
단언컨대, 혁신은 점진적이다. 성공한 혁신은 200년 전이든, 상류의 기술이든, 작은 장치로 구현되었든, 파괴적인 충격을 야기했든 상관없이 동일하다. 거의 언제나 점진적이지 갑작스럽지 않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는 이유는 모든 일이 지난 뒤에 얻은 깨달음이거나 과정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는 주체가 결과만 본 경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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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는 아르키메데스가 욕탕에서 뛰어나오면서 지른 소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극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역시 하루아침에 등장하지 않았다. 진공관에서 시작해 작고 점진적인 개선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거듭났다.

오늘날 혁신의 상징인 자동차도 마차, 증기기관, 자전거와 같은 과거 기술의 산물과 많이 닮았다. 이는 진화 과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인접할 수 있는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혁신이라 생각하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듯 보이는 많은 변화가 유사하다.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도 첫 시도에서 하늘을 나는 기계를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점진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듭했고, 몇 시간 동안 떠 있는 법, 맞바람 없이 뜨는 법, 착륙하는 법 등을 알아냈다.

혁신이 점진적인 이유는 발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이저 발명으로 1964년 노벨상을 받은 찰스 타운스는 혁신과 발명을 다음 장면을 인용하여 구분한다. 후버댐을 올려다보면서 비버가 토끼에게 말한다. “아니, 내가 직접 만든 건 아냐. 하지만 내 착상에서 나온 거야.” 발명자는 좋은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득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적당한 가격으로 실용화되어 실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때 얻을 수 있다. 그 이면에 발명가의 얼마나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경제학자 팀 하포드는 이러한 현상을 ‘휴지 원리’라고 부른다. 해당 기술의 놀라운 복잡성보다 이를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압력과 촉대를 활용해 대기의 질소를 고정하는 프리츠 하버의 발명은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가격에 대규모 제조가 가능해진 것은 카를 보슈가 여러 해에 걸쳐 실험을 진행하고, 다른 산업의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 결과였다. 증기기관 역시 대장장이였던 뉴커먼이 개발했지만, 이를 산업화한 것은 제임스 와트였던 점도 동일하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과물은 여왕에게 실크 스타킹을 더 많이 제공할 때가 아니라 노력에 따르는 보상이 꾸준히 줄어드는 공장 여성들도 실크 스타킹을 살 수 있게 만들 때 얻어진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에서 혁신의 의미를 정확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혁신에 대한 영웅적인 스토리가 넘쳐난다. 아니 오히려 혁신은 점진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발명가의 왕관을 쓰고 싶은 혁신가가 많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 과학 전문 기자인 매트 리들리는 <혁신에 대한 모든 것>을 통해 이를 자신이 이룬 성과가 누군가의 노력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음을 인정하기보다 세상을 계몽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작동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한편에서는 지식재산권 제도가 이러한 경향을 부추긴다. 혁신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특허들과 차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특허의 범위가 너무 넓어 혁신이 저해되기도 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혁신은 점진적이라는 시각은 제도 설계와 투자 관점에서 모두 필요하다. 혁신은 점진적이라고 느낄 때 기존 시스템에 대한 고려와 새로운 시도의 결합을 차분히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급하면 새로운 시도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진다. 또 혁신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과거 사례는 제조업 분야에 많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요구는 서비스업에서 나타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산업구조가 다른 분야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알아야 그 효과를 최대한 누릴 수 있다. 혁신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혁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