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
“거스름돈 가져가셔야죠” “괜찮아요. 안 가져갈래요”서울 시내 버스 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카드를 들고 오지 않아 현금으로 요금을 내는 승객 가운데 귀찮거나 부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거스름돈을 외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마을버스 기사는 “학생 중 10%는 현금을 내는데, 거스름돈을 가져가지 않는 비율이 체감상 절반 이상”이라고 했다. 교통카드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예 ‘현금 없는 버스’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동전 사라지는 속도, 작년보다 2배 빨라동전을 쓰는 사람이 갈수록 줄면서 중앙은행 금고에 쌓여가는 동전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주화(鑄貨) 순환수 금액은 15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7억 원)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순환수액이란 환수액에서 발행액을 뺀 금액이다. 이 수치가 급증한 것은 그만큼 시중의 동전 수요가 높지 않아 재발행 속도를 늦췄다는 뜻이다.
한은은 매년 꾸준히 진행하던 ‘범국민 동전 교환 운동’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2019년 5월 동전 2억2100만 개(총 322억 원어치)를 은행권으로 바꿔준 게 마지막이다. 한은은 “2018년까지만 해도 주화 수요가 상당히 높았지만, 카드와 같이 현금이 아닌 지급 수단의 이용이 확대되면서 주화 사용도 줄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계지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1.6%(2021년 기준)까지 낮아졌다. 신용·체크카드(58.3%)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사실 ‘비용 효율성’을 생각하면 동전은 안 만드는 게 나은 물건이다. 액면가치보다 제조원가가 비싸서다. 동전은 구리를 비롯한 여러 비철금속을 섞어 만드는데, 국제 원자재 시세의 변동에 따라 한은도 손해를 보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도 한은은 새 동전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의 지난해 동전 발행액은 258억 원. 정점을 기록한 2015년(1031억 원)에 비하면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적다고도 할 수 없는 규모다.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한은은 “아직 먼 미래 얘기”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학생과 노인, 외국인 관광객,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부실한 지방 거주자 등은 여전히 동전과 지폐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라며 “비상시 지급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사용 줄었지만 사라지진 않을 것” 동전 사용이 급감한 반면 지폐 사용은 최근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7월까지 화폐 환수율은 85%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71.3%)을 웃돌았다. 특히 20% 초반대까지 떨어졌던 5만 원권 환수율은 역대 최고 수준(76.3%)으로 올라왔다. 금리 상승에 따라 화폐 보유의 기회비용이 증가하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서 대면 상거래가 정상화된 영향이라고 한은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