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역설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먹거리를 고르고 있다.  한경DB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먹거리를 고르고 있다. 한경DB
롯데마트는 지난 4월 1000원짜리 두부와 콩나물을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출시했다. 용량은 모두 300g으로, 일반 대기업 브랜드에 비해 50% 이상 저렴하다. 이들 제품은 각 상품군에서 판매량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은 시대에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한 걸까. 얇아진 지갑에…쇼핑객, 가격부터 본다고물가와 불황의 여파로 소비자들이 상품값에 한층 민감해지면서 유통업계에 ‘가격 역설계’ 바람이 불고 있다. 가격 역설계란 상품을 기획할 때 판매가부터 먼저 정하고, 원가와 이윤은 정해진 판매가에 맞춰 조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통상 기업들이 원가와 이윤을 반영해 판매가를 정하는 것과 반대 개념이다. 이익을 줄이는 대신 박리다매식으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이윤은 포기하고 모객에 집중하는 ‘불황 타개 전략’인 셈이다.

맛은 물론 겉까지 멀쩡한 A급 과일만 진열하던 대형마트에서 크기가 작은 B+급 상품을 내놓는 대신 값을 20% 이상 낮추기도 한다. 쇼핑객들이 제품을 살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소가 가격이 되고 있어서다. 이마트는 5980원짜리 하이볼용 위스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음식점에서 파는 소주 한 병 가격(5000~7000원)을 감안한 역설계 상품으로, 시판 중인 위스키 원액 중 최저가에 속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눈에 띄게 저렴하다 보니 손님을 끌어모으는 효자 상품 역할을 한다”며 “이걸 사는 김에 다른 제품도 함께 집어 드는 연계 구매 효과까지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격 역설계의 원조 격인 이랜드 킴스클럽의 ‘델리 바이 애슐리’는 지난해 초 출시 이후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500만 개를 넘어섰다. 애슐리퀸즈 뷔페 메뉴를 기반으로 한 180여 종의 델리 식품에 3990원의 가격표를 붙여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적인 상품 기획 방식대로라면 8000원대에 팔아야 하지만 식재료를 대량 매입하고 마진을 최대한 줄였다는 설명이다. 최근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급등하자 하루 평균 판매량이 2만5000개 선까지 늘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벅찬 상황이라고 한다.

저가 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편의점에서도 가격 역설계를 활용한 균일가 상품이 늘고 있다. CU는 880원 육개장, 990원 과자, 2990원짜리 캡슐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가격 민감도가 높은 실속형 소비 트렌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초저가 경쟁은 당분간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소 연매출 4조, 저가 커피 매장은 1만 개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내수 위축 속에 ‘초저가 전문’ 매장들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다이소 운영업체 아성다이소는 지난해 매출이 3조9689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7% 늘었다. 영업이익은 3711억원으로 41.8% 급증했다. 국내 5대 저가 커피 브랜드인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빽다방, 더벤티, 매머드커피의 매장 수는 최근 총 1만 개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