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디지털 경제와 반독점 규제
산업 전략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 여부를 고민할 때 유의미한 결론 도출할 수 있어
플랫폼 규제 이슈가 한창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발의된 법안만 20건 이상이지만, 직접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플랫폼 정책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도 한창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작된 논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확산되더니 이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1940~1950년대 미국, 대기업에 기술 공개 강제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규제해야 한다는 명분은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다. 1950년대의 대기업 독점 규제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트랜지스터 특허를 획득한 AT&T가 예비 경쟁자들에게 제작 방법을 알려주도록 강제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그중 하나였다. 석유업에서 전자업으로 막 전환한 이 작은 기업은 2년 뒤인 1954년 첫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생산했다. 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개인용컴퓨터가 탄생했다.산업 전략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 여부를 고민할 때 유의미한 결론 도출할 수 있어
미국의 규제기관은 1941년에서 1959년 사이 100개 이상의 기업에게 특허 기술 이용을 승인하라고 강제했다. 전자제품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백열전구 비밀 기술을 나눠야 했고, IBM은 대형 컴퓨터 제작법을 책자로 발간해야 했으며, 나중에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이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천재 창업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줄 알았던 현상의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가 있었던 것이다.거대 기업 독주로 독점 규제 당연시당시 정부의 규제가 이토록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기업의 등장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인은 스스로를 자작농과 숙련공, 상공인의 나라라고 정의했다. 북동부와 중서부에서 토지와 자본 소유권은 광범위하고 고르게 배분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철도와 대기업이 부상하면서 전에 없던 경쟁 방식이 등장했다. 거대 기업이 작은 경쟁자를 집어삼켰고, 소비자에게는 높은 요금을 부과했다. 일부가 막대한 수익을 가져가면서 경제적 독립이라는 미국인의 꿈은 차츰 사라졌다. 이는 결국 미국의 첫 반독점법인 셔먼독점금지법으로 이어졌다. 이 법에 의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34개 회사로 쪼개졌다. 당시 경제적 효율성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이 이어지면서 1970년대까지 반독점 기조는 계속되었다. 달라진 것은 경제학자들의 시각이 반독점법에 반영되면서부터다. 이들은 스탠더드 오일 사례를 달리 해석했다. 당시 정부는 스탠더드 오일이 경쟁하는 도시마다 석유를 손해 보고 파는 방식으로 독점을 형성하면서 소기업 경쟁사를 폐업에 이르게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들이 경쟁사를 인수하면 독점 행위로 훨씬 더 큰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쟁사 인수보다 낮은 가격을 선택했다. 더 싼 가격에 석유를 판 이유는 단지 더 낮은 비용으로 석유를 생산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점차 반독점법에 스며들면서 독점과 관련한 규제 완화의 압력은 계속 높아져갔다.소비자에 이익 된다면 독점도 문제 안 돼1970년대부터 반독점 기조는 빠르게 변화했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반영해 법 해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는 농부의 나라, 다음에는 노동자의 나라로 정의했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나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노동이 아닌 소비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자 정부의 개입은 정당성을 잃어갔다. 시장지배력이 소비자에 대한 가격인상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문제 삼지 않는 기조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미국 항공산업을 4개 회사가, 자동차 제조는 3개 회사가, 맥주 산업은 2개 회사가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플랫폼 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인 요즘, 미국의 반독점 역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 적용의 결과보다 당시의 경제·사회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플랫폼 규제를 둘러싼 팽팽한 대립은 끝나지 않거나 의미 있는 결론을 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플랫폼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활용할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는 한 규제 여부에 대한 논의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입지를 고려할 때 공정만 따질 수도, 경제적 효율성만 생각할 수도 없다. 플랫폼을 활용해 어떤 장점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될 때, 즉 산업 전략을 중심으로 고민할 때 규제를 둘러싼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