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堀墓鞭屍 (굴묘편시)
▶ 한자풀이
堀: 굴 굴
墓: 무덤 묘
鞭: 채찍 편
屍: 주검 시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이름
- <사기(史記)>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정치가로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초나라 평왕의 태자 건의 태부(太傅: 왕의 고문 격)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가 오사를 시기해 평왕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오사와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을 죽이고 자서까지 죽이려 했으나 재빨리 몸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강대국을 이룬 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초나라로 쳐들어갔지만 평왕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생전에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한 평왕이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를 조성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탓에 무덤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의 도움으로 왕의 무덤을 찾은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철장(鐵杖) 300을 쳐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 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

굴묘편시(掘墓鞭屍)는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도를 넘는 지나친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하던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의미가 비슷하다.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산군 때 성행했으며 김종직(金宗直), 송흠(宋欽),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참고로 역사적으로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한 극형은 능지처참(陵遲處斬)이다. 팔다리와 어깨·가슴 등을 잘라 낸 뒤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였다.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陵遲) 고통을 서서히 최대한으로 느끼면서 죽어 가도록 한 잔혹한 처형이다. 거열형(車裂刑)도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수레를 끌어 죄인을 찢어서 죽이는 끔찍한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