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디지털 이코노미와 반도체
반도체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국제 정세 파악과 산업 전략 수립이 가능.
반도체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국제 정세 파악과 산업 전략 수립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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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근본적으로 수백만 개의 1과 0으로 작동하는 기계다. 스마트폰 위에 보이는 아이콘과 버튼은 물론 이메일과 사진, 유튜브 동영상 모두 디지털 코드로 구성되며, 그 코드는 0과 1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0과 1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류의 흐름을 의미할 뿐이다.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이러한 전류를 처리한다. 트랜지스터란 0과 1을 처리하고 기억하고 켜고 끌 수 있는 아주 작은 스위치다. 켜지면 1이라는 신호를, 꺼지면 0이라는 신호를 생산한다. 이런 트랜지스터가 실리콘으로 된 작은 조각 위에 수백만 개 혹은 수십억 개가 모인 물건을 반도체라고 한다.미·중 패권 전쟁의 핵심반도체는 국제 권력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들 같은 빅테크 기업을 떠올지만, ‘실리콘’은 반도체를 의미한다. 반도체는 벨 연구소에서 처음 생산한된 이래로 페어차일드반도체와 인텔을 거쳐 AMD, 마이크론 등으로 계속 이어지며 미국은 반도체를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에도 많은 반도체는 캘리포니아에서 설계하고 만든 도구로 제작한다.
중국은 반도체 수입에 지출하는 비용이 석유보다 많다. 중국 관료들은 석유보다 반도체 수입 항로가 막히는 것을 더 걱정한다.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자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중국이 대만을 견제하는 이유도 반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라는 이름의 TSMC는 반도체의 가공과 소형화를 특출나게 잘하는 기업이다. 얼마 전까지 TSMC는 미국의 애플과 중국의 화웨이 양쪽을 최대 고객으로 두고 있었다. 만약 대만의 반도체 생산 시설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전 세계의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 자동차 생산, 통신망 등 많은 영역에 차질이 생겨 그 피해는 수천억 달러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컴퓨팅 파워’의 주도권이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확보의 핵심이 된 오늘날, 대만은 반도체 덕분에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다.반도체와 글로벌 공급 사슬반도체는 어느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 2020년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해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지만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PC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는 높아졌다. 이러던 와중에 2021년 일본 반도체 시설이 불에 타고, 미국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인 텍사스 사막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반도체를 조립하고 테스트하는 말레이시아가 코로나 락다운으로 멈추어 섰다. 이는 전 지구에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자동차 제조사들이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해 생산 설비를 몇 주씩 가동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