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느낀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국에서 이제는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생글기자 코너] '극단적 선택' 표현에 숨은 함정, 다시 돌아볼 때다
직장인, 연예인, 학생들의 사망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7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자살 소식을 전할 때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곡한 표현이 동원된다. 이는 2004년 마련된 자살 보도 윤리강령에 의한 것으로, 자살 모방 및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언론의 선의에서 비롯됐다. 표현뿐만 아니라 자살의 동기, 방법, 도구, 장소 등의 보도도 제한된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첫째, 자살 예방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추상적인 표현은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살을 극단적인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여겨지게 한다.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은 자기 속마음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잃는다. 셋째, 자살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인의 선택으로 왜곡한다. ‘왕따’와 마찬가지로 자살 역시 고용, 입시 장벽 같은 한국 사회의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인데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자살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느낀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한국에서 이제는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과 사회뿐 아니라,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도 자살 문제의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유진 생글기자(계원예술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