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디지털 경제와 정부
사회적 하이리스크 사업은 주로 정부가 맡고, 기업 성공 버팀목 역할도. 디지털시대엔 공공과 민간의 분업이 중요.
언제인가부터 공공부문은 느리고 관료적인 반면 민간은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주체로 이분화됐다. 거짓말도 반복되면 진실처럼 믿게 된다고 했던가. 반복적으로 이런 이미지에 노출된 사람들은 이를 상식이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자 이분법은 더욱 강화됐다. 하지만 실상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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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기업의 적 또는 비효율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은 국가는 경제 전면에서 물러나 경제 성장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교육, 연구 같은 보조적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나머지는 혁신적인 민간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생긴 과다한 부채가 원인임을 알지만, 많은 사람은 공공부채가 원인이라고 믿는다. 물론 정부지출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재정적자라는 주장에는 논리적 공백이 존재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공공부채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건 사실이다.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를 넘을 경우 경제 성장을 저하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높은 국가부채에도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는 국가도 존재한다. 코로나19 이전 시기의 캐나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정부가 시장에서 유의미한 존재가 되기 어렵게 한다. 일례로 미국의 에너지부는 연구개발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다. 인구당 에너지 연구에 투입되는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미국 에너지부가 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공공부문은 그 반대다. 부정적 인식은 좋은 인재를 끌어올 수 없고, 이는 유의미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부정적 인식이 더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공공벤처 자본과 민간벤처 자본사람들은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이 제한돼야 한다는 말에 익숙하다. 정부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들은 국가가 민간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실패는 대부분 민간보다 훨씬 어려운 목표를 설정한 탓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근거로 국가는 혁신적이기 어렵다고 비난한다. 공공벤처와 민간벤처 자본의 비교에서도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많은 경우 공공벤처는 민간벤처 자본보다 더 고위험 분야에 투자하며, 미래 수익에 낮은 기대치를 둔 인내자본이다. 하지만 민간자본은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혜택을 요구하거나 정부를 압박한다. 미국의 거대 제약사는 공공자금을 통한 연구개발에 의존하면서도 자신들은 많은 규제와 형식주의에 얽매여 있다며 정부를 압박한다. 많은 영역에서 국가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짊어지며, 묵묵히 시장을 창조하고 혁신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혁신적인 역할은 제약회사가 담당하며, 정부는 참견하는 시어머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이 형성돼 있다. 이 같은 오해는 결국 소비자 편익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제약회사는 연구개발 측면에서 정부의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막대한 연구개발비’라는 명분으로 의약품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한다. 규제와 시장이라는 이분법물론 민간부문의 노력과 중요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구글과 아마존은 디지털 경제가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밀접한 변화인지 보여줬다. 민간의 벤처자원도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재원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저서 <기업가형 국가>에서 문제는 국가가 그저 규제하고 통제하는 역할로만 비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페이스북과 구글, 유수의 생명공학 기업은 몇몇 천재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듯하지만, 구글 성공의 바탕인 알고리즘이 국립과학재단의 지원금으로 개발됐고, 생명기술의 기초인 분자 항체의 경우 벤처자본가의 투자 이전에 영국공공의학연구심의회연구실에서 항체가 발견됐다는 점은 간과한다는 것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경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빠른 변화는 불확실성의 확장을 의미하고, 이런 시기일수록 뚜렷한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늘날 산업전략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오늘날 국가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창조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때 공공과 민간의 의미있는 역할 구분이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