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때는 그냥 '사과했다'라고 하면 된다. 이걸 '사과의 뜻을 표했다'느니 '사과 의사를 전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틀어 쓴다. 이는 '건강한 문장'이 아니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평등을 가장한 역차별’ 등 법안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 “손해배상 조항을 포함하면서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차별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2021년 이즈음 당시 여권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입법화를 추진했다. 이 문구는 그 법안을 설명하는 대목 중 하나다. ‘사과의 뜻을 표했다’는 비틀어 쓰는 말그런데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문장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근로자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기업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사람이~’ 부분이다. 이는 글쓰기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관형어 남발’의 한 유형이다.

원래 우리 어법은 이런 경우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이~’처럼 쓴다. 이때 ‘-고’는 앞말이 간접인용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술동사가 뒤를 받치게 돼 문장에 운율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관형어화해 ‘차별했다는 지목을 받은~’ 식으로 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일탈적 어법은 정치적 표현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라는 입장을 밝히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국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법이다. ‘입장’을 이상하게 풀어낸 형태인데, 이 역시 자주 나오는 오류다.

그렇다고 새삼 일본에서 건너온 말 ‘입장’을 쓰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입장’이란 말의 정체를 비롯해 그 용법을 여기서 다시 건드릴 필요는 없다. 우리말에서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유용성도 나름대로 갖춘 말이다. 오늘 ‘입장을 밝히다’ 표현을 다시 꺼내는 까닭은 말을 비틀어 쓰지 말자는 뜻에서다. 단어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관형어 대신 부사어 써야 ‘힘있는 문장’이 표현은 글을 늘어지게 한다. 또 의미를 모호하게 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여부는 말을 얼마나 명료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느냐에 있다. 더구나 그것이 글말이라면 간결함도 갖춰야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하면 그만인데 이를 ‘~라는 입장을 밝혔다’ 식으로 쓰는 것은 누가 봐도 구태의연하다. 말한 것은 ‘말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입장’이 들어갈 필요도 없고, 거기에 ‘밝혔다’고 쓸 이유는 더더욱 없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사례다.

관형어 남발을 줄이고 부사어를 살려 써야 문장에 힘이 붙는다. ‘부사어의 관형어화’ 현상이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 중 하나는 문장을 권위적으로 읽히게 한다는 점이다. 대개 정치권 인물이거나 대기업 총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등장하는 문맥에서 이런 표현이 잘 나온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사과할 때는 그냥 ‘사과했다’라고 하면 된다. 이걸 ‘사과의 뜻을 표했다’느니 ‘사과 의사를 전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틀어 쓴다. 문어체는 좋게 말하면 격식체라서 일상적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 많다. 이것을 마치 점잖고 격식을 갖춰 말하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문장’이 아니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행위자의 의도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일종의 정치적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의 언급, 외교적 언급, 고위층의 발언 따위에서 이런 게 많다는 점에서 권위적 표현의 잔재이기도 하다. ‘사과(감사)의 뜻을 전했다’ 식 표현을 버리고 곧바로 ‘~라고 사과했다/고맙다고 했다’라고 쓸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