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하다'는 자동사다. '날 출(出), 돛 범(帆)'이 어울렸다. 돛을 달고 나아가다, 즉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뜻이다. ~위원회를 출범합니다"가 어색한 까닭은 자동사를 타동사로 썼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앞서 ‘무엇을 담을까’를 궁리한다면 그것은 글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한다면 이는 글의 ‘형식’을 헤아리는 것이다. 글의 내용과 형식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 가운데 우리가 다루는 것은 주로 ‘형식’에 관한 얘기다. 형식이란 곧 어법을 뜻한다. 어느 정도 내용(글에 담을 자료)을 얽었다면 이후에는 말을 다듬어야 한다. 즉 ‘형식’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글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동사-타동사 구별 못한 非文 많아좋은 글은 어법을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어법은 (모국어 화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의 표현 방식’이다. 어법을 벗어나면 어색해지고 이는 곧 세련되지 않은, 격을 갖추지 못한 표현이 되고 만다. 그중 한 가지, 오늘 우리가 공략할 대상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이다. 너무 기초적인 문법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의외로 틀리는 이가 많다.

“제4기 전자정부추진위원회를 출범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전자정부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전자정부 발전 유공자를 포상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에 정책뉴스로 이를 알렸는데, 공교롭게도 문법 오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범하다’는 자동사다. ‘날 출(出), 돛 범(帆)’이 어울렸다. 돛을 달고 나아가다, 즉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돼 비유적으로 어떤 단체가 새로 조직돼 일을 시작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무역선 두 척이 아침 일찍 출범했다” “그 회사는 자본금 50억원으로 출범했다”처럼 쓴다. “~위원회를 출범합니다”가 어색한 까닭은 그래서다. 자동사를 타동사로 썼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출범합니다”라고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다.

이런 오류는 너무도 흔하다. 가)OO시의 조치는 주민 편익과 지역경제를 우선한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나)글로벌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의 ‘우선하다’ 역시 자동사다. “능력과 실력이 우선하는 사회”처럼 쓴다. 이를 타동사로 쓰려면 ‘우선시하다’라고 해야 한다. “그는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한다.” 대개 모국어 화자들은 ‘우선하다-우선시하다’의 구별을 직관적으로 습득한다. 그게 잘 안된다면 ‘~시(視)하다’를 유념하면 좋다. ‘~를 우선해 본다’는 뜻이라 목적어와 함께 써야 한다.

나)에선 반대로 타동사를 자동사로 착각하고 썼다. ‘지속하다’는 ‘성장을 지속하다’ ‘학업을 지속하다’처럼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다. 예문처럼 ‘경기 침체’를 주어로 쓰고 싶으면 ‘~지속될’ 식으로 피동형으로 하면 된다. 이 오류도 아주 흔히 발생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자리 회복세가 지속하고 있다” “기업 규제가 점점 강화하면서 한국이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같은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 ‘지속되고’ ‘강화되면서’처럼 피동형으로 써야 할 곳이다. 헌법·민법에 문법 오류 수두룩해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런 오류는 일상의 글쓰기뿐만 아니나 심지어 헌법 조항에도 남아 있다.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헌법 제53조 ⑦항) ‘발생하다’는 자동사여서 ‘효력이 발생하다’라고 쓰는 말이다. ‘화재가 발생하고’ ‘민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화재를 발생했다’ ‘민원을 발생했다’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법을 우리 헌법에선 생뚱맞게 쓰고 있다. 더구나 민법에는 이런 오류가 수두룩하다(김세중 전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 <민법의 비문>). 덧붙이면, “어젯밤 화재사고가 발생했다”라고 하는 건 문어체이고 구어체, 즉 말로 하면 “어젯밤 불이 났다”이다. “민원이 발생했다” 대신 “민원이 생겼다”라고 해보자. 그게 더 자연스럽고 친숙할 것이다. 오랫동안 입에 익은 표현, 그것이 곧 ‘우리말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