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28) 의무지출과 재량지출
직장인들은 소득세, 주민세,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제외하고 월급을 받습니다. 바로 세금과 4대 보험이죠. 세금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해져 있어 납세 의무가 있습니다. 개인으로서는 당장 줄일 수 없는 고정 지출입니다. 국가로 범위를 넓히면, 나라 살림을 맡은 정부도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법으로 정한 정부의 지출정부도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적자가 발생해 빚을 내거나 지출을 줄여야 합니다. 빚을 내는 건 국가 신용등급이나 환율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계속 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써야겠지요. 하지만 지출도 무작정 줄일 수가 없습니다. 국민에게 납세 의무가 있듯이 정부에도 법으로 정한 지출이 있습니다. 이를 ‘의무지출’이라고 합니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의무지출을 ‘재정지출 중 법률에 따라 지출 의무가 발생하고 법령에 따라 지출 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 및 이자지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회보험, 공적연금,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비용 지출 등이 해당하죠. 총지출에서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가 ‘재량지출’이고, 이는 정부가 정책 의지에 따라 줄이고 늘릴 수 있습니다.(128) 의무지출과 재량지출
지난 3월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에서 재량지출의 10%를 감축해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국가채무를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죠. 기재부 전망에 따르면 올해 총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3.5%로 연평균 증가율 7.5%를 기록해 2026년에는 55.6%까지 늘어난다고 합니다.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페이고 원칙과 재량지출 감소의 딜레마의무지출에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생계급여 등 복지 지출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복지지출은 한 번 도입되면 없애거나 규모를 줄이기 어려워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지출’입니다. 문제는 의무지출 규모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빠른 고령화로 연금이나 복지 혜택을 받을 고령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기재부 전망에서도 의무지출 비중이 매년 늘어납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의무지출이 증가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 때 반드시 이에 대응하는 다른 의무지출을 감소시키거나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도록 해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하는 ‘페이고 원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의무지출을 줄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재량지출을 줄이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재량지출에는 국가의 잠재성장력과 밀접한 사회간접자본(SOC), 연구개발(R&D)과 관련한 지출이 많습니다. 국가 간 산업 경쟁이 치열한 와중에 이런 지출이 줄어 국가 경쟁력이 하락한다면 결국 의무지출을 지급할 재원도 부족해질 것입니다. 곳간을 관리하는 정부가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죠.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