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은…CSR이란…CSR를…CSR가…''CSR은'과 'CSR이란'에서는 R을 '알'로 읽었다. 이에 비해'CSR를'과 'CSR가' 에선 R을 '아르'로 읽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영문자 R을 '아르'로 읽고 써왔을까?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사각지대에서 건져올린 '알(R)'](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AA.33608633.1.jpg)
토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SR은’과 ‘CSR이란’에서는 R을 ‘알’로 읽었다. 이에 비해 ‘CSR를’과 ‘CSR가’에선 R을 ‘아르’로 읽은 것이다. 앞말에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말 조사가 ‘-은/는, -이란/란, -을/를, -이/가’로 달라진다. 이런 부분은 글쓰기에서 의미가 달라질 만큼 중요 사항이 아니라고 치부돼 자칫 간과해왔지만, 실은 늘 눈에 거슬리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영문자 R을 ‘아르’로 읽고 써왔을까? 오랫동안 ‘아르/알’은 우리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알’로 읽는데, 규범은 ‘아르’였다는 점에서다. 더구나 그 ‘아르’가 이론적·문헌적 근거 없이 잘못 읽고 표기한 데서 출발해 관행적으로 우리말 표기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22년 국립국어원은 이 표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이 ‘아르’의 근거는 무엇일까? 아무리 문헌을 뒤져도 왜 ‘아르’로 적어야 하는지 규명할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큰사전>은 표제어로 ‘유에스에스알’을 올렸다. 유에스에스알(U.S.S.R)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즉 지금은 사라진 ‘소련’을 가리키던 말이다. 우리말 최초의 대사전 격인 <큰사전>에서 당시 R을 ‘알’로 읽고 적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2022년 말 ‘알/아르’ 복수표기 인정그런데 이후 1973년 나온 한글학회 <새한글사전>을 비롯해 1980년대 이희승 <국어대사전>, 이숭녕 외 <국어대사전>은 물론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르기까지 죄다 R을 ‘아르’로 다뤘다. 한국에서는 R을 ‘알’로 표기하고 발음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사전에는 ‘디브이아르(DVR), 에이아르에스(ARS)’ 등으로 올라 있어 실제 언어생활과는 괴리가 있었다.
문제는 ‘R’을 ‘아르’로 적게 된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영어 R의 발음은 영국식으론 [a:], 미국식으론 [a:r]다. 특히 영국영어이든 미국영어이든 어말에서 [r]이 실현되지 않는다. 가령 ‘넘버(number), 보일러(boiler), 기타(guitar)’ 등 몇 개만 살펴봐도 어말의 [r]은 한글 표기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된다.
R을 ‘아르’로 적는 유일한 근거는 외래어 표기법상 ‘국제음성기호와 한글대조표’에서 자음 앞 또는 어말의 [r]는 ‘르’로 적도록 돼 있다는 것 정도다. 또 일본에서 ‘R’을 ‘アル’([a:ru]·아루)로 읽고 적는 점이 우리 규범이 ‘아르’로 된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결국 그동안의 표기인 ‘아르’는 일본식 발음과 1970년대 이후 기존 국어사전 등에서 제시된 표기가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것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