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디지털 경제와 신뢰
역량은 신뢰 형성의 한 요인이지만, 역량만으로 장기적인 신뢰를 형성하기는 어려워
많은 사람이 특정 택시 플랫폼을 사용한다. 택시 중개 시장의 대부분을 한 기업이 독식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이 힘을 이용해 심지어 불공정한 행위로 정부의 제재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는 비교적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그 플랫폼을 비판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역량은 신뢰 형성의 한 요인이지만, 역량만으로 장기적인 신뢰를 형성하기는 어려워
사람들이 해당 플랫폼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능력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필요할 때 택시를 탈 수 있게 해준다. 우버는 보다 극적이다. 우버는 어떤 상황에서도 탄력요금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눈보라가 날리던 미국 뉴욕시에서 우버의 요금은 7배나 높아졌다. 이는 호주 시드니 인질극 현장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2017년 뉴욕 택시 파업 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 7개국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을 때 택시노동자연합은 JFK공항에서 1시간 동안 운행을 중단을 선언했다. 같은 날 우버는 탄력요금제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은 택시 파업을 이용한 꼼수 전략을 비판했고, 이는 #DeleteUber 운동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앱을 삭제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우버로 돌아왔다. 우버 없는 불편한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2017년 수많은 부정적인 언론 보도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우버는 월평균 약 7500명의 운전자가 40만 건의 운행을 달성했다. 역량과 신뢰학자들은 어떻게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연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된 덕분이며, 이는 여러 요소에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중 한 가지가 ‘역량’이다. 이는 신뢰가 한편에서는 기술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형성됨을 의미한다. 도덕과는 상대적으로 연관성이 적은 유형의 신뢰다. 역량이 신뢰로 이어지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신뢰란 매우 제한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버가 직장에서 집으로 문제없이 데려다준다면 신뢰는 형성된다. 샹카르 가네산 노트르담대 경영학과 교수의 연구도 부분적으로 우버가 받는 신뢰를 설명한다. 그는 기업이 공급업체와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 결과 두 가지 요인이 장기적인 관계를 강화함을 밝혀냈다. 바로 의존성과 신뢰다. 만약 오직 한 농부만이 딸기를 재배한다면, 딸기잼 생산자는 그 농부에게서 딸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농부가 아무리 직원을 부당하게 대우해도 말이다. 이는 불편하기로 유명한 뉴욕과 보스턴 등지에서 우버가 환영받은 이유다. 지하철로 1시간 거리가 우버로는 20분이면 충분하고, 요금도 택시보다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우버의 서비스는 믿을 만하다. 사람들은 우버의 선의를 믿진 않지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능력만큼은 탁월하다고 믿는다. 가네산 교수는 이를 인지적 신뢰라고 설명한다. 역량만으로는 부족한 신뢰하지만 역량이 신뢰 형성의 전부는 아니다. 우버는 공격적이고, 규제기관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단기목표를 달성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대가를 치렀다. 2015년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에게 대항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더블라지오는 2016년 9월까지 우버의 성장세를 1%로 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우버의 성장세는 약 3%였다. 그러자 우버는 우버 앱에 ‘더블라지오’ 탭을 추가했다. 시의회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승객의 대기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는지 보여주는 탭이었다. 이 같은 도발은 소비자에게는 효과적이었지만 규제당국엔 그렇지 않았다.
결국 2018년 뉴욕시는 승차공유 차량 규모를 제한하는 법안을 미국 주 가운데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2019년에는 우버 운전자가 새로운 승객을 찾아 돌아다니는 시간을 제한하는 법안도 내놨다. 이는 결국 기업공개(IPO) 참패로 이어졌다. 2019년 5월 10일 증시에 데뷔할 때 우버는 주당 45달러였지만, 장이 열리자 42달러로 떨어졌고 이후 더 낮아졌다. 1975년 이후 기대가치와 실제가치의 격차가 가장 컸던 IPO로 기록됐다. 우버의 사례는 기업에 대한 신뢰가 역량만으론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술이 이기적이고 부당하고 고객과 직원, 투자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훨씬 큰 대가를 치르고 만다.
디지털이라는 수단은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해 추구해야 하는 장기적 가치는 디지털 이전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