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견
증권사들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의 모습.  한경DB
증권사들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의 모습. 한경DB
2차전지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은 올 들어 증시에서 가장 뜨거웠던 종목 중 하나다. 올초 9만3400원이던 주가가 4월 한때 31만5500원까지 폭등하면서 코스닥 시가총액 1위까지 올랐다. 에코프로비엠의 지주회사인 에코프로도 시총 2위 자리를 꿰찼다. 2차전지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단기간에 주가가 과열돼 ‘묻지마 투자’가 몰린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지난 3일 한 증권사가 에코프로비엠에 대해 투자의견 ‘매도’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날 에코프로비엠 종목 보고서에서 “현재 주가는 2030년까지 예상 성장을 반영한 상태”라며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주목받은 까닭은 국내 증권사가 특정 종목에 매도 의견을 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서치 전문가가 제시하는 투자 조언증권사들은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의 투자가치를 판단해 나름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식 투자자는 이들 투자의견을 참조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증권사들이 매일 아침 쏟아내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증권사에 따라 세부적인 단계 구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투자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이 종목은 살 만하다”고 권하는 ‘매수’와 “이 종목은 파는 게 낫다”고 조언하는 ‘매도’다. 매수와 매도의 중간으로 ‘중립’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국내 증권사의 투자의견은 상승장에서든 하락장에서든 매수 일색이어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주요 증권사 32곳 중 28곳은 매도 의견을 한 번도 제시하지 않았다. 외국계 증권사는 매도 의견이 10~20%대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증권사의 영업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증권사의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수수료는 개인투자자의 손익 여부가 아니라 주식 거래 규모와 연동된다. 매매가 발생하기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분석 대상이 되는 기업 대부분이 증권사의 ‘고객’인 점도 자유로운 투자의견 제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증권사들은 기업공개(IPO), 투자은행(IB), 신용공여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어느 회사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가는 ‘미운털’이 박혀 영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국내 증권사 28곳, 매도 의견 ‘0%’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가 중립 의견만 내도 투자자들은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해석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경제신문 기자
증권업계 내부에서도 “기업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내기 힘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고서 작성 부서를 독립시키거나 보고서를 유료화하는 등의 대안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리서치 담당 부서가 증권사 내부에서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고, 보고서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어 ‘돈을 벌어오는 부서’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