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귀천 없이 누구나 읽기 쉽고, 알기 쉽게'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독립신문의 창간사설에 깃든 정신이다. 그것이 곧 언어주권을 세우고, 국어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지름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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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떼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함이라.”(독립신문의 창간사설 중)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열강의 각축으로 조선왕조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구한말. 1896년 4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이 탄생했다.쉬운 글말 쓰기…독자중심주의 표방독립신문은 한국 언론사(史)뿐만 아니라 국어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창간사설에서 신문 최초로 한글 전용(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과 띄어쓰기(귀졀을 떼여 쓴즉) 도입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하고 ‘아무라도 신문 보기가 쉽고 말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신문의 글쓰기 원리를 생각할 때 지금 다시 봐도 무릎을 치게 하는 선구자적 혜안이다. 후대 언론인들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삼아 매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언어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신문의 글은 여전히 공급자 위주이고 독자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다. 자동제세동기, 이주배경인, 그린택소노미, 알이백, 성인지감수성, 사보임, 촉법소년….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몇 가지만 나열해도 신문언어가 얼마나 일상의 말에서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동안 ‘자동제세동기’란 말을 자주 접했다. 5~6년 전쯤 지하철역 등 다중 이용시설에 배치돼 화제가 됐다.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는 갑자기 심장 기능이 정지할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 기기다. 이 말이 너무 어려워 논란이 됐다. ‘자동’은 알겠는데 ‘제세동기’는 일상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세동(除細動)’이란, 의학용어로 ‘잔떨림(細動) 제거’의 전용어다. 그러니 제세동기는 ‘세동을 제거하는 기계’란 뜻이다. ‘세동’은 심장마비를 유발하는 ‘부정맥 현상’을 말한다. 호된 비판을 받고 지금은 대부분 ‘자동심장충격기’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120여 년 前 가치 지금도 유효해기후위기에 따른 청정산업이 각광받으면서 나온 게 ‘그린택소노미’다. 유럽연합(EU)에서 2020년 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녹색산업을 뜻하는 그린(Green)에 분류학을 뜻하는 택소노미(Taxonomy)가 결합한 말이다. ‘녹색분류체계’라고 하면 그만이다. 어떤 에너지원이 친환경·녹색 산업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원자력발전을 이 범위에 넣느냐 안 넣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2월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 활동으로 분류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켰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이주배경인 350만 명 시대를 앞두고 특별위원회를 꾸려 본격 활동에 나섭니다.” 지난 3월 한 방송에서 전한 특위 출범 소식에는 낯선 말이 등장한다. ‘이주배경인’이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국민통합위원회가 다문화 정책 간담회를 열면서 처음 언론에 알려진 말이다. 이 용어는 학술적 개념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사람들, 즉 외국인 근로자, 이민자, 이주배경청소년을 비롯해 난민, 북한이탈주민 등을 아우르는 용어다. 하지만 ‘이주’와 ‘배경인’이 잘 결합하지 않고 더구나 ‘배경+인’이 성립하는 말인지도 의문스럽다. 그동안 ‘다문화 OO’식 표현에 익숙해온 점에 비하면 낯설고 어렵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일상의 용어가 필요하다.

'저널리즘 글쓰기 10원칙' 저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저널리즘 글쓰기 10원칙' 저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해하기 쉽게, 이치에 맞게, 익숙한 언어로 편하게 읽힐 때 글도 맛깔스럽다. 글쓰기에서 ‘자연스러움’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 ‘상하귀천 없이 누구나 읽기 쉽고, 알기 쉽게’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독립신문의 창간사설에 깃든 정신이다. 그것이 곧 언어주권을 세우고, 국어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지름길이다. 오늘 다시 127년 전 독립신문의 창간정신을 되새겨보는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