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3년 남짓한데, 햇수로는 5년째다"란 말은 만 개념으로는 3년 언저리인데 햇수로 따지면 5년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햇수' '-년째'의 용법은 세는나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될 튀르키예 대지진에 국제구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지진이 일어났으니 20일 현재 만 열나흘(14일)이 됐다. 이를 “지진이 발생한 지 열나흘 만”이라고 해도 되고, “지진 발생 열닷새째”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모두 시간 경과를 나타내는 우리말 표현이다. 그런 것에는 ‘만’을 비롯해 ‘햇수’ ‘O년째’ ‘O년 차’ ‘O주년’ ‘O돌’ 등이 있다. ‘햇수’와 세는나이, 따지는 방식 같아“만 나이” “서울에 온 지 만 5년이 지났다”에서 ‘만’은 한자어 ‘찰 만(滿)’ 자로, 같은 말이다. 787호에서 살펴본 ‘만 나이’와 ‘돌’ ‘주년’을 복기해 보자. 이때의 ‘만’은 ‘일정하게 정해진 기간이 꽉 참’을 이른다. 가령 2021년 10월 8일 태어난 아이는 2023년인 올해 10월 8일에 ‘만 두 살’이 된다. 그것을 ‘두 돌’이라 해도 되고, 탄생 ‘2주년(週年)’을 써도 같은 뜻이다.“헤어진 지 3년 만에 다시 만났다”에 쓰인 ‘만’도 같은 기간을 나타내긴 하지만, 이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이들 ‘만’은 시기가 꽉 찬 것을 이른다는 게 핵심이다. 가령 어제 주가지수가 폭락했다가 오늘 반등했다면 ‘만 하루’가 된 것이고, ‘하루 만’에 반등한 것이다. 이를 자칫 ‘이틀 만에 반등했다’고 하면 틀린 표현이다.
‘햇수로 5년’이란 말은 ‘5년째’란 뜻이다. ‘햇수’란 말 그대로 ‘해의 수’다. 단순히 해의 바뀜을 따지기 때문에, 가령 2019년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2023년 현재 ‘햇수로 5년’이라고 한다. 그것을 ‘5년째’라고도 한다. “결혼한 지 3년 남짓한데, 햇수로는 5년째다”란 말은 만 개념으로는 3년 언저리인데 햇수로 따지면 5년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햇수’ ‘-년째’의 용법은 세는나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입사 5년 차다.” 이런 말도 흔히 쓴다. 우선 간단한 문법사항부터 짚어보자. 이때 쓰는 ‘차(次)’는 의존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쓴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실제 글쓰기에선 이를 무시하고 붙여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만 2년부터 만 3년 전까지 ‘3년 차’‘차’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횟수’ ‘차례’의 뜻을 나타낸다. 이것은 행위가 구별되는 거라 쓰임새가 비교적 분명하다. 몇 번째라는 의미로, 동작 단위를 따지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선생님 댁을 수십 차 방문했다’ 같은 게 그 예다. 또 하나는 일정한 기간을 나타내는 말 뒤에서 쓰이는데, 이때 용법이 까다롭다. 가령 ‘입사 3년 차’라고 하면 입사하고 얼마나 됐을 때 쓰는 말일까? ‘임신 4주 차’ ‘결혼 10년 차에 내 집을 장만했다’ 같은 표현도 많이 사용한다. 여기엔 시간의 흐름, 즉 기간이 걸쳐 있어서 ‘만’ 개념을 따져야 한다.
주 단위를 따지는 ‘-주 차’부터 살피는 게 좀 쉽다. 임신해서 첫 주를 1주 차라고 한다. 임신 4주 차는 임신 후 4주에 접어들고부터 5주째가 되기 전까지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입사 1년 차’란 입사 1년에 해당하는 시기, 즉 입사한 뒤부터 만 1년이 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나타낸다. 입사한 지 만 1년이 되면 이때부터 2년 차이고, 다시 만 2년부터 만 3년이 되기 직전까지를 3년 차라고 한다.
응용해보자. 홍길동 씨가 2021년 4월 15일 입사해 2023년 2월 현재 재직 중이라면, 입사 몇 년 차일까? 그는 입사 이후 1년 동안, 즉 2022년 4월 14일까지 1년 차다. 이어 4월 15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가 2년 차, 2023년 4월 15일부터 다시 1년간을 3년 차라고 한다. 정확히는 만 1년10개월 다녔으니 2년 차에 해당한다. 올해 4월 15일이 되면 비로소 만 2년이 되고, 이때부터 ‘입사 3년 차’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햇수로는 2023년 2월 현재 이미 ‘입사 3년째’다. 그럼 ‘결혼 10년 차’는 언제를 가리킬까? 이는 결혼하고 만 9년이 된 뒤부터 만 10년 직전까지의 기간이다. 만 10년이 되고부터, 즉 결혼기념일이 지나서는 결혼 11년 차가 된다. 햇수로 따지면 결혼기념일 이전·이후와 상관없이 그해에 결혼 11년째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