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간도협약과 영유권 문제(下)
두만강 상류인 도문시 국경.
두만강 상류인 도문시 국경.
만주의 지정학적·지경학적 가치를 잘 알고 국경 분쟁을 자주 벌인 러시아도 만주지역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러시아는 1948년 2월 간도 일대에 조선인 자치구 설치를 골자로 하는 평양협정을 북한과 체결했다. 연길 등 간도지역 일부를 북한 영토로 편입시키려 했다는 문건이 공개됐다.

중국 정부가 만주 지역을 장악하지 못했던 불안정한 상황 속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팔로군에 소속된 조선족 다수가 북한군으로 편입돼 남침에 참여했다. 이에 남북통일을 저지하고 만주를 지킬 목적으로 중공군이 대거 파병될 때도 동원돼 크게 희생당했다. 전쟁이 끝난 뒤 만주에서 조선족의 힘은 약화됐고, 1955년에는 ‘조선족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격하됐다. 이후 1962년 북한과 중국은 국경선을 재조정한 ‘조·중 비밀변계조약’을 맺었다. 뒤늦게 밝혀진 내용을 보면 간도문제와 연관된 조항들이 있다. 백두산의 천지를 분할하고, 동서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했는데, 두만강은 상류인 홍토수를 국경선으로 확정했다. 이는 이중하가 주장한 조건과 동일하다. 또 천지의 소유권은 북한이 54.5%로 중국보다 넓고, 두 강 안의 섬도 북한이 더 많이 소유했다. 이 때문에 협상 책임자였던 저우언라이는 중국에서 비판받았고, 대만도 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간도 출장소가 설치됐던 옌볜의 용정마을.
간도 출장소가 설치됐던 옌볜의 용정마을.
반면 우리 입장에서도 ‘토문’을 두만강으로 인정했으므로 간도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100년의 시한(2009년)을 넘긴 정부를 비판한다. 그런데 을사늑약 자체가 정당한 국제법에 벗어나고, 간도협약도 조약 당사국인 대한제국이 배제됐으므로 국제법상 효력이 못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진행되는 모든 영토 갈등은 이어도를 제외하고는 100년이 넘은 사건들이다. 따라서 어떤 나라가 100년 시효설을 주장할 경우, 역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불리하게 작동될 수밖에 없다.

간도협약은 한국의 민간(간도되찾기운동본부)과 중국 정부에 중대한 문제로 남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2002년 1단계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중점과제들을 선정했는데, 간도 등 국경과 영토 문제의 비중이 매우 컸다. 지금도 간도가 중국 영토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 간도 문제를 영토 문제를 넘은 동북진흥계획의 일환인 창치투(長春 吉林 圖們) 계획 및 동해진출전략과 연관지어 활용하고 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수교하면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상호영토를 존중하고 보존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정치력과 군사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과거 한국 역사 문제 관련 발언, 신중화제국주의로 변질하는 ‘중국몽’을 보면 간도 문제의 제기는 조선시대보다 더 현실성이 없을 것 같다. 시 주석은 2017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행사에서 6·25전쟁에 대해 ‘정의로운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해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한국은 과거 한때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간도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첫째, 학문적으로 토문의 위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규명하고, 간도협약의 부당성과 국제법상의 문제점을 일본을 비롯한 세계에 알려야 한다. 둘째, 조중변계조약의 내용과 북한이 제안하고 수용한 배경을 파악하고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셋째, 국가 운명과 연관지어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장기계획에 맞춰 단계별 전략을 세우고 검증하면서 당당한 태도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역사는 항상 변하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정치체가 될 수도 있고, 상호 간 또는 세 나라 간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나라와 민족에게는 빼앗겨서는 안 될 터전과 지켜야 할 역사가 있다. 늘 우리의 생활영토였던 간도가 그렇다.√ 기억해주세요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간도협약은 한국의 민간(간도되찾기운동본부)과 중국 정부에 중대한 문제로 남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2002년 1단계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중점과제들을 선정했는데, 간도 등 국경과 영토 문제의 비중이 매우 컸다. 지금도 간도가 중국 영토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 간도 문제를 영토 문제를 넘은 동북진흥계획의 일환인 창치투(長春 吉林 圖們) 계획 및 동해진출전략과 연관지어 활용하고 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수교하면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상호영토를 존중하고 보존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정치력과 군사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과거 한국 역사 문제 관련 발언, 신중화제국주의로 변질하는 ‘중국몽’을 보면 간도 문제의 제기는 조선시대보다 더 현실성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