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 역전
서울 하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5만원권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하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5만원권 지폐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의 기본 상식 중 하나는 돈을 빌리는 기간이 길수록 금리가 비싸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다. 중간에 돈을 떼일 위험이 높아지고 경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불확실성이 ‘비용’으로 금리에 반영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세계 국채(國債) 시장에서 상식을 거스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장기 국채 금리가 단기 국채보다 더 낮게 매겨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의 징후”라며 바짝 경계하고 있다. 10년 빚내는 값이 2년짜리보다 싸다?블룸버그통신은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의 전조 현상으로 여겨지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이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산출하는 세계 종합 채권 지수에 따르면 만기 10년 이상인 각국 국채의 평균 금리가 해당 국가의 1~3년물 국채 금리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국채란 국가가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을 말한다. 특히 선진국 정부가 찍어낸 국채는 신용도가 좋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23일 10년물 국채 금리가 3.8% 아래로 내려간 반면 2년물 국채금리는 4.5%를 넘어섰다. 장단기 금리의 역전 폭이 41년여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올 9월 중순 장단기 금리 역전이 14년여 만에 발생했고, 이후 두 달여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 속에 경기 후퇴 우려가 커진 점이 이런 현상을 유발했다는 분석이다. 단기 채권 금리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해 상승했다. 금리가 워낙 빠른 속도로 올라 경제를 급랭시킬 것이란 걱정이 나올 정도다. 블룸버그는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긴축 의지를 강조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장기 국채 금리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만기가 긴 안전자산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장기 국채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채권에서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 하락은 채권값 상승, 금리 상승은 채권값 하락을 뜻한다. “2000년 이후 처음 세계적으로 나타나”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경제신문 기자
미국에서는 1960년 이후 15회에 걸쳐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에서는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 우려가 아닌, 인플레이션 둔화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는 낙관적 해석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이 2024년까지는 계속되리라는 전망에 2년물 국채 금리가 높아졌지만, 이후에는 기준금리가 다시 인하될 것이란 기대감이 10년물 국채금리를 낮췄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 경기가 내년 중반쯤 후퇴기에 진입하고, Fed는 내년 말께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