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13) 선제적 금리인상
지난해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2%(전년 동기 대비) 상승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점점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사진)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라며 논란을 잠재웠죠. 당시 코로나19 이후 폭발한 수요와 일시적인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물가가 올랐지만, 향후 이런 현상이 완화돼 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현재 미국의 9월 CPI는 8.2% 상승하며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물가 상승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파월이 펀치볼을 일찍 치웠더라면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파월 의장이 지난해 금리 인상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지금은 어떤 식으로 바뀌었을까요?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면의 영향도 크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풀린 엄청난 통화량이 자산 가격과 물가를 끌어올린 면도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각종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막대하게 풀어버렸죠. 경기침체기에는 정책의 부작용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이 회복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각종 부작용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113) 선제적 금리인상
1951~1970년 Fed 의장을 지낸 윌리엄 마틴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펀치볼(파티 음료)을 치우는 것”이라고요. 경제가 회복되는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과열을 진정시키고 선제적인 대비를 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죠. 뒤늦은 판단과 정책 시행의 결말파월 의장은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채권 매입을 줄이는 ‘테이퍼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때 10월 CPI가 6.2%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CPI가 5% 이상 상승해 인플레이션 심리가 이미 고착화됐죠.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경제 주체 사이에 인플레이션 심리가 깊어지자 높아진 물가에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이는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게다가 올해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을 받으면서 공급 충격 인플레이션도 발생했죠.
Fed는 그제야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심리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졌죠. 물론 통화정책당국도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을 예상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이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을 일찍 실행했다면, 가계와 기업에 지금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했겠지요. 파월 의장은 지난 8월 잭슨홀 미팅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정 기간 실업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판단이 지난해에 유효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요?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