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디지털경제와 서비스업

선진국은 기존 강점을 서비스업에 활용, 개발도상국은 경제발전 단계 뛰어넘어 서비스업으로 직행 가능.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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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국가일수록 서비스업 비중이 크다.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비중이 커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고용 비중은 물론 가구별 소비도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소득이 높을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는 현상을 ‘쿠즈네츠 현상’이라고 한다. 노동생산성과 서비스 혁신경제학자 니컬러스 칼도어는 산업 구조는 농업에서 제조업,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하지만, 장기적으로 총소득에서 자본과 노동이 벌어들이는 비중은 언제나 일정하다고 주장했다. 일명 ‘칼도어 현상’이다. 쿠즈네츠 현상과 칼도어 현상이 양립한다면, 인공지능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 경제 전반에 널리 사용되는 세상이 와도 노동과 자본의 비중이 거의 일정할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노동생산성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은 서비스업보다 농산품이나 공산품 분야에서 상승폭이 크다. 농업이나 제조업에서는 기계가 노동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 수요가 감소하면서 임금 하락이 발생한다. 만약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는 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게 된다. 여기까지는 칼도어 현상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농업이나 제조업에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발생한 임금 감소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서비스 생산은 노동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임금이 하락하면 새로운 서비스의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혁신 유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노동 수요가 증가하면 임금은 다시 높아지고, 경제 전체의 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회복된다. 보멀의 법칙과 서비스비용윌리엄 보멀의 ‘비용질병’도 쿠즈네츠와 칼도어 현상의 양립을 설명할 수 있다. 비용질병은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상품보다 적게 향상된 상품 소비에 더 많은 돈이 지출되는 현상이다. 상품 A의 생산성 증가가 상품 B보다 클 경우 A의 공급이 더 크고 빠르게 된다. 그 결과 상품 A의 가격은 하락하고, 상대적으로 상품 B는 상승한다. 가계나 기업이 상품 A를 더 많이 소비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이들 소득 가운데 상품 B 소비에 들어가는 비중이 줄어들지 않는다. 여기서 상품 A가 제조 분야, 상품 B가 서비스 분야라면 쿠츠네츠와 칼도어의 주장은 양립 가능하다. 즉, 서비스업으로 경제구조가 바뀌지만 총소득 가운데 노동 비중은 감소하지 않는다. 제조 분야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값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력 수도 줄이기 어렵다. 현악 4중주 연주를 위해 4명이 필요하다는 점은 19세기나 오늘날이나 동일하다. 또 이들이 연주 활동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생산업계와 같은 속도로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연주자의 생산성은 19세기 이후 그대로지만, 이들의 실질 임금은 꾸준히 증가한 이유다. 이런 비용 증가는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할 수 없고, 4중주에는 언제나 4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연주회 입장료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서비스업의 비용 질병이 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서비스업산업 구조가 바뀌더라도 자본과 노동의 비중이 달라지지 않지만, 서비스업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오늘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발전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를 촉진한다. 선진국은 농업과 제조업 그리고 서비스업의 발전 단계를 거치면서 축적된 산업화의 경험이 서비스업 발전의 토대로 작용했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팜 등이 이전의 경험과 디지털이 융합된 서비스업의 대표적 사례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디지털 중심의 서비스업으로 인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교역의 세계화 현상, 디지털 혁명 그리고 서비스업 혁신 등의 요소로 인해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 직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화를 건너뛸 경우 성장과 환경을 양립시키는 경제 성장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처럼 서비스업을 통해 선진국에서는 기존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고,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계를 보완하며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각국에서 서비스 분야가 강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