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디지털 경제와 혁신

혁신 경제로 가려면 따라잡기 전략이 발목 잡지 않도록 분석과 감시해야.
한때 아르헨티나는 꽤 잘사는 국가였다. 189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40% 정도였으니, 중간 그룹에 속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일본이나 캐나다와 비슷했고, 프랑스보다는 약간 높았다. 농업으로 성공한 아르헨티나는 산업화 단계로 전환하지 못하면서 1930년대 들어 쇠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져버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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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르헨티나만은 아니다. 대다수 국가가 중간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진국 함정’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가 중진국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이다. 1960~1997년 고도성장기를 지나며 중간 소득 국가에 진입한 이후 외환위기를 계기로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왔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은 복합적이지만, 핵심에는 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개혁이 있다. 즉, 축적과 모방을 중심으로 한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에 의한 성장이 이뤄지도록 제도의 방향 전환에 성공할 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따라잡기 정책과 혁신 정책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를 기술을 따라잡는 국가와 자체 혁신을 이루는 국가로 구분한다. 모든 나라는 두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술 따라잡기를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 국가는 주로 후발 국가들이다. 후발 주자 수준에서 벗어날 만큼의 상당한 기술 도약을 위해서는 모방이 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미 앞서가는 국가들은 자체 혁신을 추구한다. 이들 국가에서 따라잡기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주 사소한 정도기 때문이다. 문제는 따라잡기 전략이 성공했을 때 시작된다. 따라잡기 전략으로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효과가 점차 떨어진다. 이 시점이 되면 방향을 전환해 첨단 수준의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하지만, 대다수 후발 국가는 여전히 따라잡기 전략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많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이런 결정이 쌓이면서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게 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중진국 함정이란 비혁신의 함정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대척점에 놓여 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경쟁을 관리해왔다. 일본 재무성은 1949년 설립 이후 수출 라이선스 발급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거대 기업집단으로 알려진 산업계와 금융계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경우에만 기업 지원금을 준다. 필리프 아기옹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경쟁억제를 통해 1980년대 중반까지 엄청난 성장률을 유지하던 일본이 이후 크게 추락한 상황이 크게 놀랍지 않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반대다. 1998년 이전까지는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이 성장해 수출을 견인하도록 정책을 설계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로 재벌 기업들이 약화되자 그 틈을 노린 신진 혁신기업들이 진입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개혁이 이뤄지면서 주춤했던 성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기업들이 유리한 대출 조건에 정부 지원을 독식하고, 국가 차원의 산업 보호 조치까지 더해져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글로벌 경쟁에 개방된 구조개혁이 이뤄지면서 혁신 국가 대열에 포함될 수 있었다. 혁신 중심 경제로의 전환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오늘날 디지털 전환도 같은 맥락에서 고민돼야 한다.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방향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강조되는 규제혁신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혁신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수단의 하나인 것이다. 그 이면에는 따라잡기 위주의 경제가 첨단 혁신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력이 따라잡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해외 사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해외 사례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해당 사례가 역할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해외에서 택시 문제를 우버가 해결했는지 못했는지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을 떼온다고 해서 빙산을 옮겨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경제는 1990년대 후반 등 떠밀린 구조개혁으로 다시 혁신 국가 대열에 포함될 수 있었지만 국민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이런 식의 구조개혁은 한 번이면 족하다. 따라잡기 전략이 혁신 전략을 발목 잡지는 않는지 날카롭게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