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봉투법
2009년 경영 위기를 맞은 쌍용자동차는 노동자 2646명을 정리해고하는 인력 감축안을 발표했다. 구조조정에 반발한 직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으로 맞섰다. 노조와 사측, 경찰과 용역업체가 뒤엉켜 쇠파이프, 화염병, 최루액 등이 난무하는 극한 대치가 77일 동안 이어졌다. 4년 뒤 법원은 쌍용차 노조에 불법 폭력 시위의 책임을 물어 회사와 경찰에 47억원을 물어주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시민사회에서 ‘쌍용차 노조원들을 돕자’며 노란색 봉투에 4만7000원씩 담아 기부하는 모금 운동이 시작됐다. 가수 이효리 씨가 동참하면서 유명해진 이 캠페인에는 111일 동안 14억7000만원이 모였다. 與 “기업활동 마비” 野 “노조권리 보장”최근 정치권과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른바 노란 봉투법은 여기서 유래했다. 노란 봉투법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붙은 별명인데, 노조 파업으로 생긴 손실과 관련해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노란 봉투법은 2015년부터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넘지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올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대해 사측이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재추진에 나섰다. 야권은 “기업이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악용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기업이 소송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조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액에 상한선을 두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노란 봉투법이 “노조에만 유리한 면책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도 사법체계상 모순이나 위헌 소지가 없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1982년 프랑스에서 노조의 모든 단체행동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곧바로 위헌 결정을 받아 시행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해외 사례 보니 … 프랑스에선 위헌 결정주요 국가는 근로자가 노조를 만들고, 근로 조건을 협상하고,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 33조 1항에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뜻하는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다. 모든 파업이 불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노란 봉투법이 논란이 되는 것은 ‘불법 파업에도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현행 노동조합법은 합법적인 노조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노란 봉투법이 추가된다면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아닌 이상 생산 차질, 매출 감소 등의 피해는 기업이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경제단체들은 불법행위자가 피해를 배상하는 법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며 노란 봉투법 철회를 촉구했다. “돈이 많은 대기업들은 그나마 감수할 수 있겠지만, 중소·중견기업 경영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