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10) 금융과 신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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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정치 분열로 정확한 정세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조선은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응하지 않고 있다가 이듬해 임진왜란을 맞았습니다. 조선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짓밟혔고, 선조는 도성인 한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게 됐죠. “전쟁을 미리 대비했더라면…”이란 생각이 선조의 머릿속에 가득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지만, 정치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국방을 강화하지 않았기에 결국 피란길에 오르게 됐으니 후회해봐야 이미 소용없는 상황이지요. 신뢰는 금융 활동의 바탕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금융권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바로 주요 은행 내부 직원들이 자금을 횡령한 사건입니다. 은행 직원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고객이 믿고 맡긴 돈을 함부로 사용했습니다. 은행 내부적으로 제대로 된 감시체계가 작동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겠죠. 금융감독원과 은행은 철저한 수사로 횡령한 금액을 회수하고 앞으로 관리·감독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은행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땀 흘려 번 돈을 믿고 맡겼는데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으니 고객들이 앞으로 해당 은행에 돈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뜻의 ‘신뢰’는 금융 영역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내 소득을 은행에 저축할 수 있는 것은 은행이 고객 돈을 잘 관리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고객에게 받은 예금을 바탕으로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해 경제의 ‘혈액’을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신뢰가 없다면 금융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겠죠? 은행에 맡긴 돈을 못 찾는다면?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가 고객의 인출 요구가 있으면 이에 응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해 특정 은행의 고객들이 대규모 자금 인출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은 모든 인출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게 되고, 해당 은행을 신뢰하지 못하는 더 많은 고객이 은행으로 달려가겠죠.

그것이 바로 ‘뱅크런(Bank-Run)’입니다. 뱅크런이 해당 은행에만 국한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은행 전체에 대한 신뢰 상실이 대규모 뱅크런으로 이어진다면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시중에 돈의 흐름이 끊기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이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사전에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위기가 발생해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고객에게 강한 신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