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가 보편적으로 시행된 지 몇 년 만에 노동계와 경영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동계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즈음에 맞춘 ‘하투’의 최대 이슈로 삼겠다는 분위기도 보인다. 발단은 대법원 판결(2022년 5월 26일)이었다. 산업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임금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이전의 통상임금 판결만큼 강력한 메시지가 담겼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의 도입 목적 등에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강조하며 그렇지 못한 임금피크는 잘못이라고 명시했다. 예컨대 같은 일을 하면서 55세 등으로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임금을 깎는 것은 ‘연령차별’인 만큼 부당하다는 게 요지다. 노동계의 문제 제기는 제반 조건이 명확하지 않은 현재의 임금피크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임금피크, 유지해야 하나 폐지해야 하나. [찬성] 정년연장 따른 인건비 경감, 고용유지 위한 '사회적 합의'임금피크제를 왜 도입했으며, 많은 사업장이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임금피크는 심대한 논란 속에 단행된 정년 연장의 보완책이었다. 2013년, 60세 정년 연장보장법이 제정되면서 단계별 시행을 거쳐 2017년부터는 300인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부응한다는 차원에서 통상 55세 전후에 퇴직하던 근로자에게 더 일할 기회를 보장한 법이었다. 법의 정식 명칭은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다.
이때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 대책이 임금피크제였다. 정년이 늘어난 기간의 인건비를 일정 비율에 따라 연도별로 줄이는 것이었다. 회사별로 57세, 58세부터 줄이는 곳도 있고 직급별로 피크 임금 시기를 달리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57세부터 임금피크를 적용하면 58세에는 이전 급여의 90%, 59세에는 85%, 정년을 맞는 60세에는 80% 이런 식이다. 회사 측과 노동조합이 대상 연령과 직급별 적용 시기, 삭감 정도를 단체협상으로 정했다. 정년연장법에 포함된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에 따른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다. 정년을 연장해 더 일하게 된 기간의 임금을 줄이고 그 비용으로 청년세대에 일자리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과 경영에 부담을 과도하게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요, 사회적 합의의 명분이었다.
임금피크제는 60세로 늘어난 정년연장법과 함께 자리잡아왔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도 임금피크제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다. 오로지 연령만으로 임금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시행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정도,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본래 목적에 쓰였는지 등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타당하다고 한 사실도 중요하다. 임금피크제로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실익이다. [반대] 본질은 반현대적 연령차별 … 법적 근거도 불확실대법원이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판결의 근본 취지는 급여에서 연령 차별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격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전국 수많은 사업장의 실상을 보자. 대부분 55세, 57세, 58세 등으로 일률적으로 피크 임금을 적용한다. 나이 외에 별다른 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다. 현대의 직장은 많은 경우 기계화 등으로 육체적 노동 강도가 세지 않은 데다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육체적 여건이 큰 변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따지려면 나이에 따른 작업량 유지 여부, 부가가치 감소 여부 등 생산성을 계산해봐야 한다. 50대라는 이유로 노동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계량적·과학적 연구보고서라도 있으면 또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연령에 따른 임금 차별은 반사회적·반현대적이고, 반헌법적다. 누가 뭐래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서 봐도 임금피크제는 폐지하는 게 맞다. 원래 이 원칙은 원청 기업과 하청업체 근로자가 같은 생산라인에서 근무할 때 적용하자는 원리이긴 하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연속적으로 하면서 같은 성과를 내는데 어느 날 피크 임금을 적용받으며 보수가 깎이는 경우에도 원용할 수 있다.
임금피크를 없애는 대신 ‘한국형 호봉제’ 급여 체계를 청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직장에서 근무가 짧으나 기나 생산성에 기반한 임금 체계로 가자는 것이다. 늘어난 정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줄어든 임금을 다 받자는 노조 측 폐지 주장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렇게 가려면 임금제도에 대한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호봉제보다는 성과급제, 연공서열식보다는 일의 종류를 기준으로 삼는 직무급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 유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없어진다. √생각하기 - 고용·임금에 과도한 법 개입이 자초한 딜레마 … 노동 유연성이 해법 고용 방식, 임금 제도에 대한 법의 과도한 개입이 초래한 산업계 대혼란이 걱정스럽다. 미국처럼 고용은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적자치(계약)의 자유’ 영역이라는 불문율이 정립돼 있다면 생기지 않았을 논란이다. 정년도 개별 기업이 알아서 설정하고, 개인도 일할 나이를 스스로 설정한다면 설령 60세가 넘어도 노사 자율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임금피크를 법으로 강요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임금피크 도입 권유라는 해당 법 조항에는 임금피크라는 표현 자체가 없다. 논란을 자초한 법의 결점이다. ‘사회적 합의’라고 해도 취지를 살려 법적 근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통상임금 판결’ 못지않은 파장을 감안하면 임금피크에 대한 법정비가 필요해졌지만, 고용·임금에 대한 법적 간섭도 줄여야 한다. 원리에 벗어난 법이 딜레마 상황을 키웠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이때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 대책이 임금피크제였다. 정년이 늘어난 기간의 인건비를 일정 비율에 따라 연도별로 줄이는 것이었다. 회사별로 57세, 58세부터 줄이는 곳도 있고 직급별로 피크 임금 시기를 달리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57세부터 임금피크를 적용하면 58세에는 이전 급여의 90%, 59세에는 85%, 정년을 맞는 60세에는 80% 이런 식이다. 회사 측과 노동조합이 대상 연령과 직급별 적용 시기, 삭감 정도를 단체협상으로 정했다. 정년연장법에 포함된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에 따른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다. 정년을 연장해 더 일하게 된 기간의 임금을 줄이고 그 비용으로 청년세대에 일자리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과 경영에 부담을 과도하게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요, 사회적 합의의 명분이었다.
임금피크제는 60세로 늘어난 정년연장법과 함께 자리잡아왔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도 임금피크제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다. 오로지 연령만으로 임금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시행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정도,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본래 목적에 쓰였는지 등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타당하다고 한 사실도 중요하다. 임금피크제로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실익이다. [반대] 본질은 반현대적 연령차별 … 법적 근거도 불확실대법원이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판결의 근본 취지는 급여에서 연령 차별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격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전국 수많은 사업장의 실상을 보자. 대부분 55세, 57세, 58세 등으로 일률적으로 피크 임금을 적용한다. 나이 외에 별다른 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다. 현대의 직장은 많은 경우 기계화 등으로 육체적 노동 강도가 세지 않은 데다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육체적 여건이 큰 변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따지려면 나이에 따른 작업량 유지 여부, 부가가치 감소 여부 등 생산성을 계산해봐야 한다. 50대라는 이유로 노동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계량적·과학적 연구보고서라도 있으면 또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연령에 따른 임금 차별은 반사회적·반현대적이고, 반헌법적다. 누가 뭐래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서 봐도 임금피크제는 폐지하는 게 맞다. 원래 이 원칙은 원청 기업과 하청업체 근로자가 같은 생산라인에서 근무할 때 적용하자는 원리이긴 하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연속적으로 하면서 같은 성과를 내는데 어느 날 피크 임금을 적용받으며 보수가 깎이는 경우에도 원용할 수 있다.
임금피크를 없애는 대신 ‘한국형 호봉제’ 급여 체계를 청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직장에서 근무가 짧으나 기나 생산성에 기반한 임금 체계로 가자는 것이다. 늘어난 정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줄어든 임금을 다 받자는 노조 측 폐지 주장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렇게 가려면 임금제도에 대한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호봉제보다는 성과급제, 연공서열식보다는 일의 종류를 기준으로 삼는 직무급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 유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없어진다. √생각하기 - 고용·임금에 과도한 법 개입이 자초한 딜레마 … 노동 유연성이 해법 고용 방식, 임금 제도에 대한 법의 과도한 개입이 초래한 산업계 대혼란이 걱정스럽다. 미국처럼 고용은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적자치(계약)의 자유’ 영역이라는 불문율이 정립돼 있다면 생기지 않았을 논란이다. 정년도 개별 기업이 알아서 설정하고, 개인도 일할 나이를 스스로 설정한다면 설령 60세가 넘어도 노사 자율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임금피크를 법으로 강요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임금피크 도입 권유라는 해당 법 조항에는 임금피크라는 표현 자체가 없다. 논란을 자초한 법의 결점이다. ‘사회적 합의’라고 해도 취지를 살려 법적 근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통상임금 판결’ 못지않은 파장을 감안하면 임금피크에 대한 법정비가 필요해졌지만, 고용·임금에 대한 법적 간섭도 줄여야 한다. 원리에 벗어난 법이 딜레마 상황을 키웠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