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안보비가 분리되면서 다른 부처의 특활비는 많이 줄었다. 2018년 이후 연간 2350억~3160억원을 오르내린다. 한 해에 600조원을 넘는 정부 전체 지출 예산으로 볼 때 많다고 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규모, 경제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대통령 부인의 옷 구입에 쓰인 것처럼 논란이 확대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기밀이 필요한 기관 운영에 쓰인다. 장관·청장 등이 대외비로 지출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고, 전부 다 공개하거나 드러내놓을 수 없는 사업도 있다. 지출의 정당성과 회계의 투명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문제 제기가 있지만, 감사원 감사도 받는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 안보비 역시 국회에 보고돼 심사를 받고 있다.
이런 예산 지출 자체를 죄악시하고 모두 원천봉쇄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성격이 제각각인 여러 기관의 공무원에게 하나같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사무실에서 틀에 박힌 일만 하라고 요구할 순 없다. 민간 부문과의 공조, 해외 협력 등으로 복잡다단한 현대 국가의 유지·발전을 위해 공직에 재량권도 줄 필요가 있다. 예산 지출에서도 자유로운 재량 공간을 줘야 한다. 교조적으로 투명성과 정보공개만 강조하다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반대] 전근대적 세금횡령 면책권…위장 예산 용인하는 정부 '분식회계'비공개로 영수증도 없이 예산을 쓰게 하는 것이 세금을 유용하게 하고, 심지어 횡령해도 상관없다는 면책 특권을 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예산 집행의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이 문제에 주로 매달려온 한국납세자연맹이 특활비를 쓰는 여러 국가기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제대로 응한 곳이 아예 없는 게 현실이다. 논란이 된 청와대 옷값과 관련한 정보공개 요청도 계속 거부됐다. 결국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 그 재판도 이례적으로 3년 이상 걸려서야 판결이 나왔다. 깜깜이 예산은 국민의 알 권리가 무시되는, 대표적인 퇴행 행정이다.
특활비 자체가 관료사회에 전근대적 특권을 용인하는 것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예산이다. 특활비의 존재 사실만 보면 한국은 현대 민주국가가 아니라 봉건국가다. 임의로 지출하고 정보공개도 하지 않는다는 게 최대 문제점이다. 적극적 정보공개야말로 최상의 반부패 정책 아닌가. 영수증 제출을 단순히 ‘권고’로 규정해둔 탓이다. 민간 기업에서라면 어림도 없다. 상장기업 등에서는 3만원 이상 지출 건에 영수증이 없으면 경비처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수백만원의 현금 지출이 반복되면 세무조사라는 무서운 철퇴를 맞을 수 있다. 특활비를 보면 정부가 탈세를 조장하는 꼴이 된다.
변칙 운용도 문제다. 법무부 경찰청 국방부 등의 특활비에는 실제로 국정원이 사용하는 ‘위장 예산’이 있다. 법무부의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 명목 특활비가 그런 사례로 추정된다. 국가정보원법에 법적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예산의 책임성과 투명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편법은 예산 지출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일종의 정부 분식회계인 만큼 바로잡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집권했으면서도 스스로는 ‘투명한 정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생각하기 - 나랏돈 지출, 정당·합리·투명해야…정보공개 요구는 '납세자 권리'특활비의 근본 문제는 비밀리에 쓰이면서 정보공개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사 등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진다. ‘청와대 옷값 논란’ 같은 소모적 논쟁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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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