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연합뉴스
정부가 이른바 ‘4세·7세 고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영유아 사교육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1일 ‘아동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만 3세(36개월) 미만 영유아를 상대로 한 사설 학원의 ‘지식 주입형 교습행위’(인지교습)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만 3세 이상에게는 하루 3시간을 넘는 인지교습을 막는다.

강압적 인지교습에 초점을 맞춘 유치원 교육을 놀이 중심 교습으로 바꿔 영유아의 정서 발달을 돕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인지교습과 놀이 중심 교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개입하는 건 자유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찬성] 창의적 두뇌 발달이 중요한 시기…도가 넘는 조기 경쟁 심화시켜 교육부가 손보려는 영유아 학습의 유해교습 행위는 △비교·서열화 △3세 미만 대상 인지교습 △3세 이상∼취학 전 대상 장시간(1일 3시간 초과·1주 15시간 초과) 인지교습이다. 비교·서열화란 말 그대로 학원생들의 학업 성취력을 서로 비교해 등수를 매기는 것이다. 영유아기는 전 생애에 걸친 인지 감성 사회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기여서 개별 유아의 다양한 특성이 발현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지교습은 교과목 위주(문자·언어·수리)의 지식을 습득시키기 위한 주입식 교습 행위를 의미한다. 교육부는 “‘A는 Apple’이라고 칠판에 적고 아이들이 크게 10번씩 따라 읽게 하거나, 알파벳 쓰기 워크북 등을 매일 일정량 채우게 하는 경우”를 인지교습의 예시로 제시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게 하고, 원서 독해와 영어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것도 인지교습에 해당한다.

인지교습의 범위를 폭넓게 적용하면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규제 대상이 된다. ‘학습식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곳은 미국 초교생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단어 시험과 독해 및 글쓰기 훈련은 물론 방과 후 ‘숙제반’까지 운영한다. 각종 시험을 통한 비교·서열화도 금지한다. 영어유치원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 ‘SR 테스트’ 등 독해력 평가 점수도 공개할 수 없다.

교육부는 영유아 학원의 과대·허위광고를 금지하는 내용도 학원법 개정안에 담을 계획이다. 상담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원들의 과대·허위광고 때문에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규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5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과태료 상한도 현행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반대] 인지교습과 놀이교육 기준 모호…선택의 자유권 침해해선 안돼 교육부의 조기 사교육 규제 논리는 강압적인 인지교습이 영유아의 창의적 뇌 발달을 저해하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정책의 당위성과 별개로 교육 현장에서는 인지교습의 정의 자체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수업을 인지교습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놀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놔둔고 단순히 수업 형식만을 제약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숫자 카드를 보고 1부터 100까지 암기시키는 것은 인지교습으로 금지되지만, 모래성에 깃발을 꽂으며 수 개념을 익히는 방식은 자유 놀이로 분류해 허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규제를 우회하는 신종 학습법이 개발될 가능성이 크며, 규제가 오히려 교육의 형태를 기형적으로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학원 업계 관계자는 “교육의 본질보다 수업의 겉 포장만 바꾸는 다양한 편법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영어유치원이 이미 읽기·쓰기 교육을 최소화하고, 예체능 활동과 영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이번 규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규제에 관한 명확한 잣대가 없어 영유아 발달 단계에 적합한 실질적 교육 환경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교육 현장의 혼란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가 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과열된 사교육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획일적 잣대로 교육 방식을 재단하고 강제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 생각하기 - 사교육 시장 '풍선 효과' 경계해야 사교육 시장 역시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한쪽을 강제로 막거나 누르면 수요는 더 비싼 비용을 치러서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수십 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확인해왔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불리는 정책 부작용이다. 부모의 불안감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교묘히 이용하는 게 사교육 시장의 생리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혹여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그 깊숙한 이면에는 공교육이 아이들의 개별적 발달과 진로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강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영유아 사교육 열풍' 차단해야 할까
영유아 사교육 규제와 병행해야 할 것은 부모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 제시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세심하게 살피고 교육적 성취까지 보장하는 효율적인 공교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공교육 내실화 없이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없다. 정부 정책의 성패는 억제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