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에도 한자어가 많이 등장한다. 교과서를 읽고 시험문제를 푸는 데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지 않는 단어들이다. 중고교 과정에 한문 과목이 있으나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대학에 진학해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하는 단계에서 한자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적지 않다.
한자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우리 고전 문헌은 대부분 한자로 기록돼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 공부가 필수적이다. 학교에서 이를 위한 기초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자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의 보편 문자이자 소통의 수단이었다. 한자 교육은 문화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 기반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는 어린이 대상 한자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공교육이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 한자 병기는 별도의 과목이 신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습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 한글 전용 정책이 추진된 이후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전문적인 문장은 물론 일상적인 언어 소통에서 일부 제한을 받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가중되지 않는 범위에서 한자 병기를 추진한다면 국어 이해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반대] 문해력은 독서로 향상 가능…한자 병기는 사교육 부추길 것한글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다. 우리말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하지만 모두 한글화돼 사용되고 있다. 현대인의 언어생활에 자리 잡아 한자 자체를 몰라도 한글만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무리가 없다. 라디오 등 매체에서도 한자 없이 한글만으로 완벽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이 이뤄진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원인으로 한자 교육 약화를 꼽는다. 하지만 한자를 몰라서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서량의 급감과 디지털 기기 과몰입 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숏츠로 대표되는 짧은 영상과 요약된 정보에 익숙해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를 주로 소비하다 보니, 호흡이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자 교육이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면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 학생들은 읽기 능력이 탁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한국 학생들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자를 섞어 표기할 경우 학생들의 읽기를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글자 해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한자 병기가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부터 검증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교육 현장의 여건도 살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이미 과도한 학습량과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 한자 병기 정책을 추진한다면 사교육을 부추겨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교육비 증가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불러일으켜 교육 양극화를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기보다 독서 위주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어휘력과 사고력을 길러주고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기 - 장점 많은 한자 교육, 학습부담 증가는 고민해야
한자 교육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우리말의 상당 부분이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자를 알면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한자 외에도 독서량 감소, 짧은 콘텐츠 중심의 디지털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인공지능(AI) 시대 문해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자 교육은 문해력 향상이란 큰 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학생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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