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조선 건국은 정변인가, 혁명인가 (下)
정도전은 학식이 뛰어나고,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인 장량을 자처할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지니기도 했다. 자기 목표를 실현하는 야망에 이성계를 끌어들이고, 끝내 성공하게 한 사람이다. 개혁 추진 이전부터 혁명에 이르는 과정 내내 정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사회 개혁의 핵심인 토지의 경작과 분배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부분적으로 실천했다. 철저한 이론 무장으로 성리학을 정치와 정책에 활용해 권문세족을 공격하기도 했다. 《불씨잡변》을 집필해 기득권인 불교 세력을 붕괴시켰다. 외교관의 경험을 살려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명나라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보였다.
반면 요동정벌의 필요성을 주장해 명의 황제인 주원장의 위협을 받았다. 결국엔 이방원에게 죽임당하는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진나라의 한비자처럼 법률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법치주의 사회의 정착을 도모했고 백성의 이익을 소중하게 여겼다. ‘백성(民)의 마음을 얻으면 민(民)은 복종하지만 민(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민(民)은 인군(人君)을 버린다.’ 그가 쓴 《조선경국전》에 나오는 글이다. 나아가 개인과 혈통에 중심을 두는 왕권보다는 조직과 능력을 중시하는 관료정치와 재상정치를 추진했다. 과거 제도가 활성화되고, 서당 등의 교육기관이 전국에 걸쳐 생겨나는 등 교육의 수혜 범위가 확대되기도 했다. 결국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죽임당했지만, 그가 추진한 많은 정책은 정적인 태종에 의해 수용됐다. 이후 세종 때 꽃을 활짝 피우면서 조선은 질적으로 변신했다. 왕권과 신권의 투쟁·자주성 상실 문제도
어떤 성격의 주체들이 어떠한 이론과 청사진을 갖고 무슨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체가 공평한 권리를 가지고 책임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영논리로 개혁과 혁명을 대하는 것은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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