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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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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부(富)를 혼동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화폐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가장 흔하고 가장 오래된 오류입니다. 화폐와 부는 통상적으로 모든 면에서 동의어로 간주되긴 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이 말은 늘 참이 아닙니다. 돈이 많은데 거지인 경우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답니다. 어떤 경우일까요? #사례1: 베네수엘라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베네수엘라는 이 나라의 돈 볼리바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거지인 나라입니다. ‘뻥’이라고요? 정말입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제법 괜찮은 나라였습니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의 나라답게 잘 살았습니다. 기름만 파면 돈이 생겼고 그 돈을 국민 전체가 나눠 가지면서 흥청망청 썼습니다. 일 안 하고도 잘 먹고 살았습니다. 석유값이 급락하자 쓸 돈이 부족해졌습니다. 국민은 공짜돈에 중독돼 있었지요. 정부는 해외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돈을 인쇄기로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2016년 254.95%, 2017년 438.12%, 2018년 6만5374.08%로 치솟았습니다. 2017년 1만원이던 치킨 한 마리가 1년 사이에 650만원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화폐를 가진 사람이 부자일까요, 닭을 가진 사람이 부자일까요? 정답은 닭입니다. #사례 2: 로마제국로마제국은 당대의 기축통화국이었습니다. 로마 디나리(denari)는 지금의 미국 달러처럼 기능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돈을 많이 썼습니다. 전쟁비, 군인 월급, 토목공사 등에 돈을 무지막지하게 썼습니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쌓여 갔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는 디나리를 더 발행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금화에 싸구려 구리를 섞었죠. 301년 금 1파운드 가격이 5만디나리(denari)였는데 얼마 뒤 21억2000만디나리가 됐습니다. 구리를 섞은 디나리 가치가 4만2400분의 1로 추락한 셈입니다. 《Guide to Investing in Gold and Silver》의 저자 마이클 맬로니는 “35달러인 금값이 150만달러로, 2000달러인 차가 8500만달러로 오른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마제국은 해체됐습니다. #사례3: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돈을 찍고 또 찍었다가 망했습니다. 마르크화는 1차 세계대전 직전 금 1온스당 100마르크의 가치를 지녔더랬습니다. 전쟁 중에 독일은 엄청난 전비가 필요했습니다. 전쟁 직후인 1920년 온스당 가격은 2000마르크로 뛰었습니다. 돈 가치가 20분의 1로 떨어진 거죠. 설상가상 전쟁배상금을 내야 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인쇄기를 돌려 돈을 찍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23년 독일은 33대의 인쇄기를 돌려서 매일 450억마르크를 찍어냈습니다. 그해 11월엔 매일 500×1000조마르크를 인쇄했습니다. 이젠 화폐와 부를 혼동하지 않겠지요? 화폐에는 아무 가치가 없답니다. 진짜 부(공장, 집, 기계, 닭, 금, 은 등)는 따로 있는 거죠. 잠깐! 재정준칙, 통화주의가 뭐지?화폐 문제는 모든 정부가 돈을 많이 쓰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나중에 문제가 되든 말든 우리는 돈을 쓰고 간다는 도덕적 해이가 정치, 경제적 목적 때문에 발생하는 거죠. 복지라는 명분으로 돈을 뿌리고,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돈을 찍어내는 식이죠. 쓰라린 경험을 한 독일은 연방정부가 돈을 마구 쓰지 못하도록 재정준칙 조항을 2009년 헌법에 넣었어요. 우리나라도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규모 대비 3%, 국가채무는 40%를 넘지 않는다’는 재정준칙을 불문율로 지켜 왔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무너졌습니다. 경제학자 존 테일러는 금리를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사이에서 적절하게 관리하는 준칙 즉 테일러 준칙을 제시했고,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건전 화폐(sound money)’를 해치는 정부의 무책임한 통화정책을 꾸짖으며 통화 증가율 관리를 강조했어요. “모든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며 ‘통화주의’를 주창했죠.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1. 베네수엘라에서 최근 인플레이션이 왜 생겼는지를 알아보자.

2. 1만원짜리 지폐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를 알아보자.

3.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관계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