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97) 벽란도와 개방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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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온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따르면 “개경엔 화려한 저택과 외국인 전용 숙소도 많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비단으로 자신을 꾸미고 다녔다. 기름·종이·말·돼지 시장이 각각 있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송나라 사람이 본 고려는 말 그대로 경제가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고려가 이렇게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방의 나라 고려고려는 건국부터 바다와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세력 기반이 바로 바다였습니다. 왕건은 해양세력을 바탕으로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 통일도 이룰 수 있었죠. 이후 고려는 개경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벽란도’라는 무역항을 통해 다양한 나라와 교역을 했습니다. 송나라부터 요·금·원나라, 왜국 그리고 저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고려에 들어오면서 개경과 벽란도 주변은 상업 활동이 활발했죠. 고려는 외국인을 관료로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광종 때 중국 후주 사람 ‘쌍기’입니다. 고려는 다양한 문물과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사회였습니다. 반면, 조선은 바다에 대한 활동을 금지하는 ‘해금정책’을 펼쳤습니다. 공무역 외의 사무역은 철저하게 규제했죠. 교역의 문을 닫은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고, 결국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잃게 되죠. 고려와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은?고려시대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코레아’, ‘꼬레아’라는 이름으로 서양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현재 한국의 ‘코리아’가 고려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죠. 고려는 벽란도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무역을 했습니다. 실제로 고려 인삼은 송나라 상인이 비단을 많이 내보이더라도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상인들이 구매하려는 품목이었죠. 고려 인삼은 다른 나라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닌 상품이었습니다. 인삼을 통해 고려는 다양한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안정적인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했죠.

오늘의 한국에도 이와 같은 상품이 있지 않을까요. 대표적으로 ‘반도체’를 꼽을 수 있죠. 한국의 반도체는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추었습니다. 최근 미국도 글로벌 공급망 문제로 한국 기업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면 다양한 혜택을 줄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한국이 수출하는 주요 제품을 살펴보면, 개방을 통해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고 기술력을 높이면서 세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개방은 과거나 현재나 국가가 경제적 부를 쌓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죠.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