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이 조선, 자동차, 타이어 등의 업종에서 1년 이상 근무하다 목과 어깨를 포함한 6개 신체 부위에서 질환이 나타났을 때 산업재해로 본다는 정부 행정예고가 있었다. ‘산재(産災)로 추정’이지만 실제로는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이 변경안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분야 질환자가 적지 않은 데다 산재보험료는 통상 고용자(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의미 있는 복지가 한 가지 분명히 늘어나는 대신 기업의 산재보험료 부담이 확 증가하는 것이다. 보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기업을 대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정부 방침(근골격계 질병 산재 인정 기준 완화)을 철회하라는 공식 요청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사용자(기업) 의사가 무시된 산재 적용 확대안에 문제는 없나. [찬성] 근로자 권익·복지 강화의 일환…근로 의욕·장기근무 의지 키울 것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가 쉽게 근절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대기업과 국가가 주인인 대형 공기업에서도 후진국형 사고가 빈번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다, 논란을 무릅쓰며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해도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근로자들은 중대 사고가 아닌 만성 질환으로도 고충을 겪고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당장 노동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중대한 재해에 대한 책임 규명도 필요하지만, 일상적 근무로 빚어지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신속 치료가 핵심인데, 많은 근로자에게 경제적 문제가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애로일 것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상당히 잘 갖춰져 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 범위를 넓이는 게 크게 도움이 된다. 산재로 인정받으면 산재기금에서 치료비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뀌는 방식대로 가면 작업현장의 조사가 생략되고 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로 가게 되니 시간부터 크게 단축된다. 다양한 산업 현장의 실태를 보면 많은 근로자가 목 어깨 허리 등의 질환과 통증을 호소한다. 단순히 현대인 병이 아니라 열악한 작업 환경과 과도한 업무 강도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업종과 작업 기간, 적용되는 질병 질환을 보면 관련성이 바로 나타나는 만큼 명백한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작업 행태, 작업 환경과 질환의 직접 상관도를 과도하게 따지기보다는 큰 틀에서 근로자 복지 강화라고 보는 대승적 관점도 필요하다. 이렇게 근로자 산재 적용을 확대해 질환을 없애면 근로 의욕과 장기근무 의지를 북돋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건설안전법 강화, 인권법 도입 등과 함께 근로자 불편을 대폭 줄이고 권익을 증진할 것이다. 다소간 늘어날 산재보험료 부담은 기업이 다른 생산성 향상으로 감당해줄 수 있지 않겠나. [반대] 산재 확대적용 기준 객관성 낮아…'무조건 산재' 도덕적 해이도 늘어날 것가뜩이나 근로자 입장만 중시하는 고용·노동 관련 제도가 늘어나는 판에 또 하나 기업 부담을 키우는 조치다. 근로자 고충을 줄인다는 명분이지만, 고용노동부의 ‘추정의 원칙’ 기준을 보면 비상식·비논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산재 판정의 핵심이 되는 역학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및 의장조립공, 조리사로 1년 이상 일하다 드퀘르벵병(손목건초염)이 생기면 바로 산재로 인정된다. 이 업무와 이 질병 간 인과관계에서 합리성이 없다.
고용부는 과거 산재 승인율을 감안해 기준을 마련했다지만, 근거가 되는 통계는 2020년 한 해치에 불과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에서 근골격계 산재 인정 기준을 중량물 취급 횟수와 취급량, 신체 부위별 작업시간 및 횟수 등으로 세분화해 규정한 것과 비교된다.
사업장별 작업 환경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 또한 문제다. 작업 환경 개선으로 근무 강도를 완화하거나 자동화로 작업량을 줄인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똑같이 적용하면 형평성 시비도 낳게 된다. 경총이 질병판정위 판정위원 103명에게 물었더니 근골격계 산재 판정 시 주된 역할을 하는 정형외과·인간공학 전문가 등 68%가 정부 기준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산재보험료는 누가 내나. 사업주인 기업이 전액 부담하고 근로자는 아예 내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산재 인정률이 크게 올라가 산재보험금 지급액은 2017년 4조원에서 2020년 6조원 규모로 늘었다. 산재 판정이 쉬워지면 산재 신청이 급증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부정 수급 같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공산이 크다. 기업이 굳이 작업 환경을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제도가 바뀌면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70~80%가 잠재적 산재 승인자가 된다는 전망도 있다. 기업 의사에 반하면서 이렇게 겹겹이 부담을 키우면 기업이 살아남겠나. 개편안은 철회돼야 한다. √ 생각하기 - 기업, 근로환경 개선 노력 회피…'작업·산재 연관성' 규명이 선결 또 한번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대목이다. 산업재해 인정 범위를 넓혀 근로자의 경제 부담 경감과 함께 건강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문제는 기업의 산재보험료 부담 증가다. 더 큰 문제는 관련 질환을 모두 근로 탓으로 돌리는 도덕적 해이 같은 것이다. 작업 환경 자체를 개선하려는 기업의 근본적 근로자 대책이 힘을 잃을지 모른다는 것도 큰 우려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연구하면서 근로자와 기업, 의사를 포함한 산재 판정 전문가 등 ‘3자 회의’를 충분히 해보는 것도 좋은 보완책이다. 서두른다고 능사는 아닌 것이다. 산재 인정 비율을 근로자가 다루는 대상의 무게나 횟수, 실제 작업 환경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유럽 각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산재등급 세분화 등을 모색하되, 전문가 의견 존중이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중대한 재해에 대한 책임 규명도 필요하지만, 일상적 근무로 빚어지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신속 치료가 핵심인데, 많은 근로자에게 경제적 문제가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애로일 것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상당히 잘 갖춰져 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 범위를 넓이는 게 크게 도움이 된다. 산재로 인정받으면 산재기금에서 치료비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뀌는 방식대로 가면 작업현장의 조사가 생략되고 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로 가게 되니 시간부터 크게 단축된다. 다양한 산업 현장의 실태를 보면 많은 근로자가 목 어깨 허리 등의 질환과 통증을 호소한다. 단순히 현대인 병이 아니라 열악한 작업 환경과 과도한 업무 강도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업종과 작업 기간, 적용되는 질병 질환을 보면 관련성이 바로 나타나는 만큼 명백한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작업 행태, 작업 환경과 질환의 직접 상관도를 과도하게 따지기보다는 큰 틀에서 근로자 복지 강화라고 보는 대승적 관점도 필요하다. 이렇게 근로자 산재 적용을 확대해 질환을 없애면 근로 의욕과 장기근무 의지를 북돋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건설안전법 강화, 인권법 도입 등과 함께 근로자 불편을 대폭 줄이고 권익을 증진할 것이다. 다소간 늘어날 산재보험료 부담은 기업이 다른 생산성 향상으로 감당해줄 수 있지 않겠나. [반대] 산재 확대적용 기준 객관성 낮아…'무조건 산재' 도덕적 해이도 늘어날 것가뜩이나 근로자 입장만 중시하는 고용·노동 관련 제도가 늘어나는 판에 또 하나 기업 부담을 키우는 조치다. 근로자 고충을 줄인다는 명분이지만, 고용노동부의 ‘추정의 원칙’ 기준을 보면 비상식·비논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산재 판정의 핵심이 되는 역학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및 의장조립공, 조리사로 1년 이상 일하다 드퀘르벵병(손목건초염)이 생기면 바로 산재로 인정된다. 이 업무와 이 질병 간 인과관계에서 합리성이 없다.
고용부는 과거 산재 승인율을 감안해 기준을 마련했다지만, 근거가 되는 통계는 2020년 한 해치에 불과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에서 근골격계 산재 인정 기준을 중량물 취급 횟수와 취급량, 신체 부위별 작업시간 및 횟수 등으로 세분화해 규정한 것과 비교된다.
사업장별 작업 환경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 또한 문제다. 작업 환경 개선으로 근무 강도를 완화하거나 자동화로 작업량을 줄인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똑같이 적용하면 형평성 시비도 낳게 된다. 경총이 질병판정위 판정위원 103명에게 물었더니 근골격계 산재 판정 시 주된 역할을 하는 정형외과·인간공학 전문가 등 68%가 정부 기준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산재보험료는 누가 내나. 사업주인 기업이 전액 부담하고 근로자는 아예 내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산재 인정률이 크게 올라가 산재보험금 지급액은 2017년 4조원에서 2020년 6조원 규모로 늘었다. 산재 판정이 쉬워지면 산재 신청이 급증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부정 수급 같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공산이 크다. 기업이 굳이 작업 환경을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제도가 바뀌면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70~80%가 잠재적 산재 승인자가 된다는 전망도 있다. 기업 의사에 반하면서 이렇게 겹겹이 부담을 키우면 기업이 살아남겠나. 개편안은 철회돼야 한다. √ 생각하기 - 기업, 근로환경 개선 노력 회피…'작업·산재 연관성' 규명이 선결 또 한번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대목이다. 산업재해 인정 범위를 넓혀 근로자의 경제 부담 경감과 함께 건강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문제는 기업의 산재보험료 부담 증가다. 더 큰 문제는 관련 질환을 모두 근로 탓으로 돌리는 도덕적 해이 같은 것이다. 작업 환경 자체를 개선하려는 기업의 근본적 근로자 대책이 힘을 잃을지 모른다는 것도 큰 우려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연구하면서 근로자와 기업, 의사를 포함한 산재 판정 전문가 등 ‘3자 회의’를 충분히 해보는 것도 좋은 보완책이다. 서두른다고 능사는 아닌 것이다. 산재 인정 비율을 근로자가 다루는 대상의 무게나 횟수, 실제 작업 환경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유럽 각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산재등급 세분화 등을 모색하되, 전문가 의견 존중이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