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고려 멸망을 부른 왜구 침입
고려시대 왜구들의 거점이며, 정벌의 대상지였던 대마도 중부의 아소완.
고려시대 왜구들의 거점이며, 정벌의 대상지였던 대마도 중부의 아소완.
통일국가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왜구의 침략은 큰 역할을 했다. 몽골과 원나라에 시달린 고려는 말기 40여 년간 왜구에게 무려 591회에 달하는 침략을 받았고 결국 멸망했다. 왜구의 침략은 이후 조선 시대에도 이어지다 ‘임진왜란’이란 정규군의 공격으로 대체됐다.

왜구는 중국 해안과 연해주 일대까지 약탈했지만, 주로 고려에 집중됐다. 왜구의 끝없는 침략과 고려의 대응왜구들은 공민왕 20년 동안에만 100여 회 넘게 침략했으며, 우왕 때는 14년 동안에 378회나 쳐들어왔다. 1350년~1392년까지 40여 년 동안 무려 591회나 침략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왜노들의 침략으로 나라는 이미 섬의 물고기·소금·목축의 이익을 잃었고, 또 곡식이 나는 기름진 들판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또 연해의 수천리 지역에는 인가에서 연기가 끊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정부는 1377년에는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려는 논의까지 했다.

고려는 뒤늦게 수세적인 태도를 버렸다. 처음에는 공격 대신 회유책을 사용했다. 공민왕은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고, 대마도 만호에게 쌀 1000석을 주고 귀화를 원하는 왜구에게 남해안의 일부 지역을 거주지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왜구는 1374년 4월에 전선 350척을 동원해 합포(마산)로 진입했다. 왜구의 해적선은 대선은 300여 명, 중선은 100명에서 200여 명, 소선은 40~80명 정도가 승선이 가능했다. 이에 비춰 400~500척씩 선단을 구성했으니 마치 전면전 같은 양상이었다. 이때 벌어진 해전에서 고려는 40척이 손실되고, 5000명이 전사하며 패배로 끝났다.

고려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이유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현상 때문이었다. 왜구들의 거점은 주로 대마도 이끼섬, 오도열도 등 규슈 북부 일대여서 식량이 부족했다. 또 여몽연합군이 침공하고 약탈한 데 대한 보복전인 의미도 있다고 풀이된다. 해당 지역들은 지정학적으로 섬이 많고, 쿠로시오(해류)와 계절풍 등을 이용해 한반도로의 항해가 용이한 환경이었다. 또한 역동성이 강한 해양인의 기질과 약탈경제의 불가피한 구조적 문제도 한몫했을 것이다. 해적 집단 세력의 성장 배경해적 집단들은 어떻게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14세기에 이르자 원나라는 부정부패로 혼란이 극심했고, 자연재해로 생활이 비참해진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명나라는 1367년에 건국했으나 북쪽에서는 북원과 싸움을 계속했다. 바다에서는 장사성 등 해양세력과 충돌 중이었다. 한편 일본은 여몽연합군의 두 차례 공격을 방어했으나 막부의 재정 부족으로 무사들의 이탈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탈한 무사들은 농민·어민들과 합세해 해적의 전력으로 탈바꿈했다. 이어 막부의 교체기인 데다 남북조 간에 벌어진 60여 년 동안의 전투에서 패배한 남조 군인들 일부가 해적으로 변신했다. 일본은 왜구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는 몽골과의 전쟁, 여몽연합군의 참전 등으로 인해 국력은 물론이고 해군력이 약화했다. 고려는 국제질서의 변화가 생기고,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왜구와 적극적인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최영과 이성계가 등장해 왜구를 격파했고, 우왕 때인 1380년에 최무선이 최신 화약무기를 이용해 진포대첩에서 승리했다.

고려는 결국 1389년에는 대마도 정벌까지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두 명의 영웅을 배출했고, 이 두 사람은 고려의 운명을 놓고 각각 다른 방식을 취한다. 바로 최영과 이성계다. 두 영웅은 고려의 존재와 백성의 행복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1388년 5월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결국 1392년에 조선을 건국했다.

해양세력으로 건국한 고려는 해군력이 붕괴하도록 방치했다. 이후 해양분쟁을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왜구에 수세적이었고, 결국 멸망했다. 왜구에 대해 ‘해안가를 약탈하는 단순한 해적집단’이란 인식을 버려야 한다. 백성들의 생존과 생활을 붕괴시키고, 고려의 멸망을 초래한 군사집단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 기억해 주세요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왜구들은 공민왕 20년 동안에만 100여 회 넘게 침략했으며, 우왕 때는 14년 동안에 378회나 쳐들어왔다. 1350년~1392년까지 40여 년 동안 무려 591회나 침략했다. 왜구는 '해안가를 약탈하는 단순한 해적집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존과 생활을 붕괴시키고, 고려의 멸망을 초래한 군사집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