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디지털 경제와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디지털 이코노미] 모토로라 레이저폰이 반짝 인기에 그친 이유는
인류 최초의 비행사가 될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스미스소니언협회 고위관료이자 하버드대의 저명한 수학과 교수였던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는 하늘을 날기 위한 드림팀을 구성했다. 미국 육군성 역시 그의 프로젝트에 5만달러를 지원했다. 1900년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된 주인공은 라이트 형제였다. 단기적인 의사결정, 조종전략라이트 형제에게 지원금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팀원 가운데 석사나 박사는커녕 대학을 다녀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1903년 12월 17일,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날았다. 랭글리 팀과 라이트 형제 팀의 목표는 같았다. 하늘을 날기 위한 노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방식만큼은 크게 달랐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사람 행동에 영향을 주는 방식 차이가 자리잡고 있었다.

TED talks에서 ‘WHY’라는 강의로 큰 공감을 받은 사이먼 시넥은 그의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통해 사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조종하거나 열의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조종전략은 소비자의 행동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쳐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도움을 주지만, 충성심을 끌어내기는 어려운 전략을 통칭하는 용어다. 최저가 경쟁이나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이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의 단기적인 호응을 끌어내는 제품 출시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종종 혁신과 참신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4년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Razr)가 대표적이다. 항공기 동체용 알루미늄 외형에 내장형 안테나와 에칭 기법을 활용한 키패드로 무장한 레이저는 두께가 13.9㎜에 불과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유명인 모두 레드카펫 위에서 레이저를 꺼내 들었다. 모토로라는 레이저의 성공에 심취해 이를 혁신으로 정의하고, 산업의 표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모토로라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경쟁사들이 레이저의 특장점과 기능을 능가하는 휴대폰을 앞다퉈 출시했기 때문이다. 모토로라는 혁신으로 산업을 리드하기는커녕 순식간에 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여러 휴대폰 제조사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WHAT에서 WHY로많은 경우 기업이 주장하는 혁신은 단지 참신함을 둔갑한 사례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전략이 장기적인 충성심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WHAT)’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집중한다. 신차를 홍보하고, 일류 대학 출신 직원들을 홍보하며, 선거 후보를 강조하는 식이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들은 ‘왜(WHY)’에 집중한다. 자기만의 목적의식과 신념이 담긴 메시지에 우선한다. 이는 해당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단지 제품 기능이 주는 만족이 아닌 그 대의에 공감하는 수단이 되도록 만든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신념을 강조하는 애플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매킨토시를 출시하며 기업 간 거래(B2B) 중심이었던 컴퓨터산업 판매 모델에 개인과 소비자 간 거래(B2C) 모델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개인이 집에 앉아서도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들은 모든 말과 행동을 통해 현실에 도전하며 개인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신념을 드러냈다. 이런 신념은 아이팟이 되고, 아이폰이 되었으며, 맥북의 형태로 구현됐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맥북을 구입하겠다고 결심한 뒤에야 더 용량이 많은 제품을 구입할지, 더 성능이 빠른 제품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사람들은 WHAT이 아니라 WHY에 이끌려 구매를 결정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연한 변화의 핵심WHY를 중심으로 한 전략 수립은 유연한 변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는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00년대 철도회사들의 노력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국가 지리상황은 물론 산업 경쟁력까지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은 WHY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관점이 좁아지며 WHAT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선로와 엔진에 거듭된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20세기 시작과 함께 비행기가 등장했고, 많은 철도사업자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을 철도사업자가 아닌 대중교통사업자로 정의했다면 이들은 철도 다음의 기회도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오늘날 많은 스타트업, 디지털 기업은 경제 호황이 끝없이 이어지기라도 할 듯 단기적인 전략에 의존한다. 기업에 대한 충성심은 상황이 좋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가장 중요한 시점은 어려울 때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