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68) 독성물질 골라내기, AOP
우리는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간다. 단 며칠도 화학제품 없이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화학물질은 전 세계적으로 8800만 종이 개발됐고, 지금도 12만 종이 상업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4만 종이 사용되며, 연 1t 이상 사용되는 물질은 1만6000여 종, 총 사용량은 5억t이나 된다. 놀랍겠지만 어느 보고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1년에 100만 종, 환산하면 1시간에 약 1000종의 화학물질이 지금도 새롭게 합성되고 있다고 한다.
(68) 독성물질 골라내기, AOP
![[과학과 놀자] 물질이 인체에 닿아 독성을 유발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독성발현경로'…수없이 만들어지는 화합물을 시작단계에서 걸러낼 수 있어](https://img.hankyung.com/photo/202110/01.27773102.1.jpg)
AOP를 이용하면 분자적 시작점에 대한 평가만으로 최종 독성 영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다는 전제하에 분자적 시작점을 촉발하는 반응은 최종 독성 영향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가 탄탄한 AOP라면, 이제 분자적 시작점만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 비용, 동물의 희생이 크게 요구되는 기존 동물실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자적 시작점의 반응성을 스크리닝할 수도 있고, 실험용 플레이트 위에서 세포모델을 기반으로 그 반응성을 간단히 평가할 수 있다. 수백, 수천 종의 물질도 간단하고 빠르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국제 시험법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물론 AOP라는 개념은 생체 반응을 선형적 관계로 단순화한 제한점이 있다. 실제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게 얽힌 경로를 모두 규정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적, 실험적 증거가 확실한 AOP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AOP를 제안하는 연구진은 AOP의 단계별 연결고리와 연결 강도(KER: Key Event Relationship)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AOP를 관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전문가 집단의 검토 과정을 거쳐 과학적으로 증명된 AOP만을 승인하고 있다. 독성 유발 화학물질 조합을 걸러낼 수 있어최근 AOP 연구는 더 확장돼 복합 독성발현경로(AOP mixture)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복합 독성발현경로는 1개 또는 그 이상의 핵심 현상을 공유하는 AOP의 결합이다(그림). 이를 활용하면 두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에 노출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혼합 독성 영향을 기전 기반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림처럼 각기 다른 분자적 시작점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이지만 함께 인체에 노출돼 공통의 독성 영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두 가지의 분자적 시작점 스크리닝을 통해 혼합 독성이 가능한 물질 조합을 스크리닝할 수 있고, 그 조합이 함께 사용되지 않도록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참여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연구에서도 복합 독성발현경로를 바탕으로 혼합 독성 영향이 예상되는 살생물제 조합을 찾고, 그 혼합 독성 영향을 성공적으로 검증했다. AOP로 독성물질 조합을 골라낸 사례다.
AOP는 오늘도 새롭게 합성되는 수많은 화학물질의 독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기전 기반의 대안적 방법론이다. 안전하지 않은 화학물질이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물지 않도록 더 많은 AOP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