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노벨상 못받는 한국

韓과학자가 노벨상 못받는 이유
단기 성과 지우친 R&D투자로
물리·화학 등 기초과학 못키워

과학고 졸업생들도 의대 진학
고급 인재 해외유출도 '걸림돌'

韓 과학 인프라 美이어 세계 2위
"축적의 시간 지나 노벨상 기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활발한 토론이 어려운 경직된 연구실 분위기, 기업에 의존하는 응용학문 중심의 연구개발(R&D) 투자, 시류에 편승하는 주먹구구식 투자, 인재 해외 유출, 정부 R&D 투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논문 수 등이었습니다. 당시엔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일 정도로 엄청난 자금을 과학기술에 쏟아붓고 있었지만 “노벨상은 돈만으로 안 된다”고 꼬집었던 것이죠. 아직도 모자란 기초과학 육성노벨 과학상이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네이처의 진단은 2021년 현재에도 뼈 아픈 지적입니다.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폈고 R&D 투자도 당장 돈이 될 만한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반도체는 잘 만들지만 컴퓨터의 두뇌라 할 중앙처리장치(CPU)는 미국 인텔에 의존한다거나, 휴대폰의 핵심인 모바일 중앙처리장치(AP)는 자체 개발했지만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존하는 등 원천기술보다 제품화를 위한 응용기술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초과학보다 응용과학 위주로 R&D 투자를 해왔죠. 우리나라 R&D 투자의 75%를 기업이 주도한다는 게 당시 네이처의 분석이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변호사 의사 등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에 몰린다는 점도 기초과학 발전에 걸림돌로 보입니다. 영재학교 과학고 등 과학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춘 학교도 있지만 입시 위주 교육환경은 과학고 졸업자마저도 의대로 진학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과학자의 70%가 미국에 남기를 희망했다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자료를 보면 두뇌의 해외 유출이 심히 우려되기도 합니다.

일본 과학자들은 특유의 성실함과 장인정신이 있는 반면 우리는 시류에 따라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골몰한다는 지적도 아픈 부분입니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박사학위도 없는 평범한 40대 회사원이지만 실험이 좋아 승진시험도 마다할 정도로 자신의 연구 분야에 골몰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화 ‘아바타’가 인기를 끌자 3차원(3D)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겠다거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자 AI에 대규모 투자하겠다는 등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왔던 게 사실입니다. 연구실에서는 교수와 제자 간 상명하복(上命下服·상급자가 명령하면 하급자는 따른다) 문화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교수 등 연구자들은 정부 자금을 받기 위한 행정업무에 매달리느라 정작 필요한 연구활동은 못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커지는 노벨상 가능성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R&D 투자액과 인력은 매년 5% 정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국가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의 ‘2021 세계 경쟁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 인프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8위인 일본보다 앞서 있습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조만간 빛을 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이 2011년부터 10년 동안 노벨 과학상 수상자 79명(물리학상 27명, 화학상 26명, 생리의학상 26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평균 37.9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하고 55.6세에 연구가 완성되며 69.2세에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핵심 연구 시작부터 수상까지는 평균 31.2년이 걸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상 창립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을 수상 기준으로 제시한 때문이죠. 새로운 연구성과를 거두더라도 다른 논문에 많이 인용되거나 제품에 응용되는 등 기술·사회적 파급효과가 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업적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어 머지않아 노벨상 수상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학술정보 분석기관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는 논문 인용 횟수를 기준으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5인의 우수 연구자를 선정하면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93)를 포함시켰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1976년 경기 한탄강 유역에서 채집한 들쥐에서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병원체를 발견해 이를 ‘한탄 바이러스’라고 이름지었고 예방백신(한타박스)도 개발한 분입니다. 클래리베이트가 ‘노벨상급(Nobel class)’ 연구자로 선정한 국내 연구자는 유룡 KAIST 화학과 특훈교수(66),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61),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57) 등 더 있습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젊은 연구자도 많아 이들 가운데 수상자가 나오리란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① 한국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벗어나 미래 선도자(first mover)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② 한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까.

③ 노벨상은 성·인종별로 할당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1901년 이후 58명(5.9%)에 그친 여성 수상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