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경제

공동부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 슬로건
中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31% 소유
극심한 양극화 속 '부의 재분배' 강조

강제 기부까지 압박하며 '반시장 규제'
손정의 "중국에 신규 투자 않겠다"
소로스 "시 주석, 시장원리 이해 못해"
요즘 중국의 ‘절대권력’ 시진핑 국가주석(사진) 입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공동부유(共同富裕)’. 시 주석은 지난 8월 공산당 재경위원회 회의에서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소수의 번영은 옳지 않으며 질 높은 발전 속에서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올 들어 8월까지 공동부유를 65회 언급했다. 2016년 16회, 2019년 6회, 2020년 30회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공동부유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하다. ‘다 함께 잘살자’는 것. 하지만 시 주석의 공동부유 주창이 중국에 불러온 파장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공동부유를 명분으로 경제·사회 전반을 옥죄는 반(反)시장 규제가 몰아치고 있다는 점에서다. 빈부격차 해소 명분으로 ‘군기 잡기’플랫폼의 힘을 앞세워 독점력을 높여온 빅테크(대형 인터넷 기업), 학부모들의 부담을 키우는 사교육업체, 청소년들의 시간과 돈을 빨아들이는 게임업체 등이 ‘시범 케이스’로 두들겨 맞는 중이다. 이들 업종은 앞으로 증시 상장조차 어려워졌다.

화려한 재력을 자랑하며 위화감을 조성해온 연예인들도 ‘정화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탈탈 털리고 있다. 유명 여배우 정솽이 탈세 혐의로 540억원 벌금을 맞았고, 알리바바에 투자해 수천억원을 번 것으로 알려진 자오웨이는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한국 아이돌 팬클럽이 정화 조치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한령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K팝 산업에 공동부유가 또 다른 악재로 떠올랐다.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부흥을 이끈 기업인들은 잇따라 경영 일선을 떠났다. 지난 5월 ‘틱톡’을 만든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가, 7월에는 중국 최대 가전제품 유통회사 쑤닝의 장진둥 회장이 사임했다.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을 양분한 전자상거래업체 징둥(JD)의 류창둥 회장도 2선으로 물러났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각각 1000억위안(약 18조원)을 기부하기로 하는 등 IT 기업마다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사교육은 사실상 금지됐고, 게임에는 셧다운제(이용시간 제한)가 도입됐다.

사실 공동부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은 아니다. 2012년 시 주석이 집권할 당시 내건 여러 국정운영 슬로건 중 하나였다. 공동부유론이 뒤늦게 부상한 배경에는 극심한 불평등 문제가 깔려 있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을 10년마다 교체해온 규정까지 철폐하고 3연임을 노리고 있는데, 빈부격차로 ‘흉흉해진 민심’이 장기집권의 걸림돌로 떠오른 것이다. 공동부유 실현 ‘3단계 플랜’ 세운 중국중국은 연 7~8%대 고속 성장하던 시기가 저물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31%를 소유한 반면 6억 명은 월 1000위안(약 17만원)으로 생활하는 나라다. 소득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467까지 악화했다.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비율(PIR)은 24배로 미국(4배) 유럽(11배) 일본(9배) 등을 훌쩍 넘어섰다. 24년 동안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공동부유를 실현한다는 전략을 짰다. 1단계로 계층별 소득 격차를 줄이고, 2단계로 세금과 사회보장제도 등을 활용하고, 3단계에서는 부유층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조치는 해외 자본의 ‘탈(脫)중국’ 움직임을 부채질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당분간 중국에 신규 투자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시 주석이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다같이 잘살자" 시진핑 지시에…中 IT업계부터 연예계까지 '쑥대밭'
반면 애국주의 성향을 보이는 중국의 젊은 층은 SNS를 통해 시 주석의 통치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마치 마오쩌둥 시절(1966~1976년) 공익을 명분으로 비판 여론을 억눌렀던 ‘문화대혁명’이 부활하는 것 같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