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60) 원자와 빛
플라스마 상태로 만든 뒤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물질의 특성을 찾아내는 유도결합플라스마 분광 분석장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플라스마 상태로 만든 뒤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물질의 특성을 찾아내는 유도결합플라스마 분광 분석장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머리카락 굵기의 100억분의 1 정도 작은 크기인 원자핵은 어떤 모양일까? 400억 광년 거리에 있는 먼 우주의 별들은 나이가 얼마나 되고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을까?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와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을 분석하면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분석 기술 발달에 따라 플라스마나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핵융합과 원자력과 같은 거대과학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극초단 파장을 이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 개발에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 기초과학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물질의 기본 구성 입자인 원자(atom)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레우키포스와 그의 제자 데모크리토스가 만들어낸 ‘더는 쪼갤 수 없음’이라는 뜻의 atomos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 영국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존 돌턴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원자 이론을 발표하면서 지금과 같이 원자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역학의 아버지 보어에 의해 핵과 전자로 구성된 현대적 원자 모델이 정립되었다. 빛을 측정해 어떤 원자로부터 나왔는지 확인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특정 궤도에만 위치하고, 이 궤도를 준위라 부른다. 높은 준위에 있다는 것은 에너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낮은 준위로 이동하면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때 방출하는 에너지는 전자기파, 즉 빛의 형태를 띤다. 원자에 따라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다르므로 방출하는 빛의 에너지를 측정하면 어떤 원자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해 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원자분광학이라 부르며,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으로부터 물질의 구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원자 현미경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이나 태양의 조건을 지상에 구현한 핵융합로 내부는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이다. 불안정한 높은 에너지 수준을 가진 물질인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원자와 함께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간 이온과 맹렬한 속도로 떠돌아다니는 전자가 공존하게 된다. 수억 도의 태양과 같은 뜨거운 플라스마 온도를 측정하고 그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온도계로는 불가능하다. 대신 플라스마의 온도에 따라 전자에너지의 준위가 다르므로, 플라스마로부터 방출되는 빛을 측정함으로써 그 상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계측기를 대어볼 수 없는 먼 우주의 플라스마 상태도 같은 원리로 측정해, 우주가 어떤 상태로 유지되는지 관측할 수 있다. 물론 전자의 에너지 준위 이외에도 복잡한 전자-이온, 이온-이온 간의 충돌도 측정과 분석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하고 핵융합에너지의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나노미터 크기로 빛을 쪼여 반도체 생산도양성자의 개수가 같아 원자번호는 같으나 중성자 개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원자를 동위원소라 한다. 동위원소는 원자핵의 질량과 반경이 서로 다르므로 전자의 에너지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측정하면 핵의 운동과 모양을 결정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분석기술의 발달로 매우 짧은 파장을 측정하고 분석함으로써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유럽 물리연구소(CERN)와 우리나라의 중이온 가속기 사업에서도 이런 희귀동위원소 분석을 물질의 생성 원리를 밝히는 데 활용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가 얼마나 연소하였는지 확인할 때도 우라늄238과 우라늄235의 미세한 전자 에너지 준위 차이를 이용해 조성비율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연소 정도로 환산해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용 광원. 13.5㎚의 짧은 파장의 빛을 쪼여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 넣는다. /ASML 제공
반도체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용 광원. 13.5㎚의 짧은 파장의 빛을 쪼여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 넣는다. /ASML 제공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 중 광원(光源: 빛을 발하는 물질 혹은 장치)을 사용해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을 리소그래피라 한다. 이렇게 반도체 칩 안에 현미경을 통해서야 보일 정도로 작고 미세한 소자 수십억 개를 형성하는데, 나노미터(㎚: 10억분의 1m)에 달하는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만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소자를 집적해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장비는 193㎚의 파장을 가지는 불화아르곤을 이용해 왔으나, 최근 네덜란드의 ASML이 13.5㎚의 파장을 갖는 극자외선(EUV) 광원 장비를 개발하면서 반도체업계의 ‘슈퍼 을’로 불리게 되었다. ASML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이런 짧은 파장을 측정하고 제어하는 기술이다.

원자와 원자가 방출하는 빛에 관한 연구는 물질의 비밀을 밝히는 기초과학으로서 그 결과가 거대과학과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우주산업이 주목받으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한동안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기초과학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학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와 빛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 √ 기억해주세요
권덕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권덕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에너지는 전자기파의 형태를 띤다. 원자와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을 분석하면 물질에 대해 알 수 있고 우주도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극초단 파장을 이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는 등 빛에 대한 연구는 거대과학과 첨단산업에도 활용되고 있다.